트럼프의 방중으로 드러난 ‘중국의 위상’[왓츠 인 차이나]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9일, 오전 05:30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탈 최고경영자(CEO)]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 날 중난하이에서 나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외국 정상에게 좀처럼 열지 않는 권부의 심장, 중난하이 정원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이끌었다. 그는 고목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나무들은 모두 200~300년이 넘었습니다.” 어떤 나무는 수령이 1000년이 넘는다고 소개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중 한 그루를 만져보라고 권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것은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문명의 시간이었다.

최여진 맥스캐피탈 CEO
최여진 맥스캐피탈 CEO
중국 외교에서 우연은 드물다. 안무처럼 정교하게 짜인 사전 준비와 예행연습 위에서 움직인다. 누가 어떤 표현을 공개적으로 쓰는지, 어느 수준의 인사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 어떤 풍경 앞에서 외국 정상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지까지 모두 계산된 행동이다. 그렇기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중국의 태도 변화는 단순한 외교 수사 이상의 의미로 읽힌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은 더는 압박을 견디는 국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외교에선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고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며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다. 희토류와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있어서도 한층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과거 중국 외교가 “우리는 위협이 아니다”, “평화롭게 부상한다”며 세계를 안심시키는 데 매달렸다면 이번에는 자신들이 세계 공급망과 산업 질서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 역시 인공지능(AI) 칩과 공급망 안정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제 아쉬운 쪽은 중국만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변화의 배경이다. 미국은 지난 수년간 반도체·관세·공급망 압박으로 중국을 견제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그 압박을 오히려 산업 생태계를 새로 짜는 계기로 삼았다. 중국의 힘은 더는 특정 산업 하나에서 나오지 않는다. 희토류와 배터리, 전기차와 AI가 하나의 공급망으로 엮이기 시작했다. 그 사슬의 맨 앞, 세계 희토류 가공의 열에 아홉은 중국을 거친다. 단순한 생산기지였던 중국이 이제 세계 산업이 돌아가는 길목 자체를 쥐게 된 것이다.

미국이 쥔 지렛대는 그 반대편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 있다. 그 상징이 이번 회담에 동행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다. AI칩과 반도체, 희토류와 공급망 안정이 더는 정상회담의 주변 의제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나라의 지렛대가 모두 이 영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젠슨 황 CEO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에 입국한 장면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기업은 외교 무대의 주변에서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교의 대상이 아니라 외교의 주체가 된 것이다. 정작 중국 측은 이에 상응하는 빅테크 대표를 동원하지 않았다. 외교 무대에 기업을 함께 세워야 했던 쪽은 미국이지 중국이 아니었다. 이번 회담이 보인 중국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중국과는 달랐다. 세계의 공장도, 통제된 사회도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한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양국 통상 갈등도 불거졌다. 미국이 중국 기업 100여 곳을 블랙리스트에 등재한 것에 대응해 중국도 미국 기업에 제재를 가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변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언어로 그 변화를 읽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외교 협상력은 군사동맹보다 공급망의 길목에서 만들어진다. 그 길목을 쥔 중국은 더는 세계에 “우리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1000년 된 나무 앞에 세웠듯 중국은 상대를 자신의 시간과 무대로 불러들인다. 이 변화에 대해 한국에 묻는다.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한국 기업은 그 무대에 함께 서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무대 아래에 머물러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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