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산유국인데 기름 부족 …굴착기 못돌려 곡괭이·삽으로 구조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02일, 오전 08:3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서 정작 연료가 없어 지진 구조작업이 멈춰 섰다. 굴착기가 있어도 넣을 기름이 없어 시민들이 곡괭이와 삽, 맨손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파헤치고 있다.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플라야그란데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두 차례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사진=AFP)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플라야그란데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두 차례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사진=AFP)
1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해안 도시 라과이라에서는 두 차례 강진이 도시 상당 부분을 무너뜨린 지 일주일이 다 되도록 주민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고 있다. CNN이 만난 한 굴착기 기사는 왜 장비를 세워뒀느냐는 질문에 넣을 휘발유가 없다고 답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100여년 만의 최악의 지진을 겪고도 연료 부족 탓에 맨손으로 가족과 친구를 파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최대 피해지역인 라과이라의 상황은 특히 참혹하다. 습한 공기에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주민들이 곡괭이와 삽, 맨손으로 고층 아파트 잔해를 부수고 있었다. 9층짜리 아파트에 있던 어머니와 여동생, 매제, 조카를 찾으러 미국 탬파에서 날아온 엔지니어 아셀 멘도사는 이틀째 땅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수색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철근을 자를 도구조차 없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토로했다. 인근 아라과주에서 온 민방위팀도 드릴이나 탐지 장비가 없었고, 정부 등이 보내온 식수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멘도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의 생존을 믿는다며 “시신을 찾기 전까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다. 국회의장 호르헤 로드리게스는 최소 229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전날보다 약 350명 늘어난 수치다. 로드리게스는 현 대통령 권한대행의 형제다. 지진으로 5000여명이 다치고 1만5000명 이상이 집을 잃은 것으로도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수만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유엔도 베네수엘라 정부와 함께 추가 사망에 대비해 시신 안치용 자루 1만구를 확보하고 있다. 라과이라 항구의 임시 영안실에는 관이 높이 쌓였다.

실종자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통신이 끊기고 혼란이 이어지자 주민들은 민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 실종 신고를 하고 있는데, 한 곳에만 5만명 넘게 접수됐다.

정부 대응을 둘러싼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치분석가인 카르멘 베아트리스 페르난데스 데이터스트라테히아 대표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국가 역량을 오로지 억압과 선전에만 쏟은 탓에 기본적인 수요조차 감당할 능력을 스스로 허물었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잔해에서 나온 귀중품을 빼돌린 혐의로 당국자 4명이 체포됐다. 베네수엘라 과학·형사수사국(CICPC)은 이들을 직위 해제하고 사건을 사법당국에 넘겼다며 어떤 경우에도 부패나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망명 중이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귀국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폭스뉴스에 자신과 베네수엘라 국민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초기 혼란을 인정하면서도 대응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로드리게스 의장은 정해진 우선순위에 따라 자원봉사자를 배치하는 새 조치를 내세웠고,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은 국민들에게 정부를 믿어달라며 공동체 단위로 조직을 꾸려야 구조가 정확해진다고 당부했다.

당국은 라과이라 진입을 차단하고 특별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이고 있으며, 1만4000명 넘는 군경이 일대를 순찰 중이다. 국제 구조대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미국은 국무부를 통해 1억5000만달러(약 2329억원) 규모의 지원을 발표하고 구조 인력 약 250명을 파견했으며, 한때 폐쇄됐던 라과이라 항구와 공항도 다시 열려 구호물자가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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