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구조조정 안갯속…CEO "공장 폐쇄보다 좋은 방법 있어"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13일, 오후 02:5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던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가 공장 폐쇄 강행에서 한발 물러섰다. 감독이사회에서 구조조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사흘 만에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감원 규모도, 공장 폐쇄 여부도 확정된 게 없어 직원 6명 중 1명꼴로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인 현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본사. (사진=AFP)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본사. (사진=AFP)
◇12대 7 부결…노조·주정부 연합에 막혔다

블루메 CEO는 12일(현지시간) 독일 빌트암존탁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난해에만 독일 내 공장 비용을 평균 20% 개선했다. (이는) 강력한 진전”이라면서도 “우리는 모든 항목에서 비용을 더 줄여야 한다. 공장을 닫는 것보다 더 똑똑한 해결책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폭스바겐 측도 제품 포트폴리오의 복잡성을 줄이고 매력적인 시장에 라인업을 집중하겠다는 뜻만 밝힌 상황이다.

블루메 CEO가 직접 언론에 나선 것은 지난 9일 감독이사회에서 그가 내놓은 비용 절감안이 찬성 7표, 반대 12표로 부결된 데 따른 것이다. ‘그룹 타깃 픽처’로 불린 이 방안은 2030년까지의 청사진으로, 최대 10만명을 감원하고 독일 공장 4곳을 추가 폐쇄하는 내용이라고 독일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폭스바겐그룹의 전 세계 임직원은 65만 7000여명으로, 6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는 셈이다. 하노버·엠덴·츠비카우 공장과 아우디 네카르줄름 공장이 폐쇄 후보로 거론된다. 현실화하면 1990년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IBM을 넘어서는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 감원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노동자 대표들과 볼프스부르크 본사가 있는 니더작센 주정부 측 이사들이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니더작센주 정부는 회사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계획이 너무 불분명해 찬성하는 것이 무책임했을 것이라는 반응이 이사진 사이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부결로 취임 4년차인 블루메 CEO의 리더십도 타격을 입게 됐다. SZ는 그가 오는 9월 감독이사회에 앞서 기존 구상을 대폭 손질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룹 내부의 한 관계자는 SZ에 “올리버 블루메는 이제 문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전기차 지연에 ‘중국 쇼크’…알짜까지 내놨다

폭스바겐의 갑작스러운 추락은 전기차 전환 실패와 중국의 추격이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다. 2015년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일찌감치 전기차에 돈을 쏟아부었지만,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이 어그러지면서 신차 출시가 늦어졌고 소비자 반응도 미지근했다. 그사이 중국 경쟁사들은 전기차 기술에서 빠르게 앞서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에서는 비야디(BYD) 등 현지 업체에 고객을 빼앗기며 예전 같은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미국의 관세는 아우디·포르쉐 등 고급 브랜드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제프리스에 따르면 독일의 자동차 생산비는 포르투갈·스페인 등의 약 2배로 추정되며 원가를 낮추기도 쉽지 않다. 결국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8%까지 추락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전 연 1200만대였던 생산 목표는 900만대로 쪼그라들었다.

급기야 알짜 자산까지 매물로 나왔다. 폭스바겐은 지난 8일 선박용 엔진 자회사 에버렌스 지분 51%를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에 넘기기로 했다. 부채를 포함한 기업가치는 100억유로(17조 1829억원), 매각 대금은 74억유로(12조 7154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구조조정 비용이 이를 집어삼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파트릭 후멜 UBS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하반기 수십억유로에 이를 수 있는 추가 구조조정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했다. 배터리 자회사 파워코와 자율주행 부문 등 추가 매각설도 흘러나온다.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츠비카우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직원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AFP)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츠비카우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직원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AFP)
◇60년 된 ‘폭스바겐법’…시험대 오른 ‘독일 모델’

블루메 CEO의 발목을 잡는 것은 폭스바겐 특유의 지배구조다. 감독이사회 정원 20석 중 주주 측 1석이 비어 현재는 19석. 노동자 측이 10석을 쥐고 있고, 여기에 니더작센주 몫 2석이 가세하면서 12대 7 구도가 만들어졌다.

1960년 민영화 당시 제정된 ‘폭스바겐법’은 더 높은 벽이다. 생산시설 신설·이전은 감독이사회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하고, 주주총회 중요 안건도 일반 기업(4분의 3)보다 높은 5분의 4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지분 20%를 쥔 2대 주주 니더작센주가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노사가 함께 결정하는 ‘공동결정제’는 독일 제조업의 자랑이었다. FT는 이 제도가 확장기에는 잘 작동했지만 격변기에는 대응 속도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하며, 폭스바겐 사태를 독일식 제조업 모델이 전기차 시대와 ‘중국 쇼크 2.0’에 적응할 수 있느냐를 가늠할 시험대로 규정했다.

블루메 CEO는 폐쇄 후보 공장에 방산업체를 유치하거나 중국에서 개발한 자사 모델을 생산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해왔다. 하지만 FT는 검증되지 않은 구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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