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블랙록, 브룩필드, KKR 등 주요 금융사들이 사우디와 UAE 관계 악화에 대비한 내부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금융사는 양국 국부펀드가 운용하는 3조 달러(약 4500조원) 이상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수년간 리야드와 아부다비에 사업 거점을 확대해 왔다. AI, 인프라,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걸프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지원하는 예멘 남부 분리주의 세력인 남부과도위원회(STC) 지지자들이 지난 2월 남부 달레주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AFP)
사우디와 UAE는 예멘과 수단 등 중동·아프리카 주요 분쟁에서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며 갈등을 키우고 있다. 특히 예멘에서 갈등이 깊다. UAE는 2015년 친이란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하자, 예멘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개입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후 양측의 공조는 깨졌고, UAE는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을 상대로 공세를 벌이고 있다.
이란과의 관계를 두고도 사우디아 UAE의 대응은 엇갈렸다. 사우디는 이란과의 긴장 완화에 무게를 둔 반면 UAE는 상대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여기에 지난 4월 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전격 탈퇴하면서 양국 갈등은 경제 분야로까지 번졌다.
최근에는 사우디에서 UAE로 향하는 은행 송금이 이례적으로 지연됐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일부 UAE 기업은 사우디 비즈니스 비자 발급에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금융권에서는 양국 갈등이 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낮게 보지만, 앞으로는 리야드와 아부다비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글로벌 금융사와 다국적 기업들은 양국 사업을 각각 운영하는 방안과 계약 조건 재검토 등 대응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갈등이 원유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OPEC를 떠난 UAE는 산유량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게 된 반면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사우디는 재정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유가를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유라시아그룹은 양국 경쟁이 장기화할 경우 사실상의 ‘가격 경쟁’으로 이어져 국제유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갈등은 중동 공급망 재편에도 변수로 꼽힌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강화하면서 기업들은 사우디와 UAE를 잇는 육상 물류망 활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양국 관계가 더 악화하면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걸프 지역 전문가들은 제2의 카타르 단교 사태를 떠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2017년 사우디와 UAE 등이 카타르와 외교·무역 관계를 끊으면서 금융과 물류가 큰 혼란을 겪었다. 당시 글로벌 은행들은 카타르 사업을 하면 사우디와 UAE 고객을 잃을 수 있었고, 반대로 카타르를 외면하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미 싱크탱크 뉴라인스연구소의 다니아 아라이스 선임연구원은 “사우디와 UAE의 갈등은 이제 양국에서 동시에 자금과 계약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리스크가 됐다”며 “양국의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번 경쟁은 아라비아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