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20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미국 조사업체 델오로그룹은 올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액이 1조3000억달러(약 1939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류를 달에 보낸 미국의 아폴로 계획에 10년간 들어간 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의 4배가 넘는 액수를 단 1년 만에 쏟아붓는 셈이다.
시장 규모에서도 역전이 예고됐다. 미국 그랜드뷰리서치는 데이터센터 관련 시장이 2033년 9022억달러(약 1345조원)로 지난해의 2.4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5376억달러(약 802조원)로 더 컸던 스마트폰 시장은 2033년 7491억달러(약 1117조원)에 그쳐 순위가 뒤집힐 것으로 예측된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수요는 더 뜨겁다. 이달 초 일본 가와사키시에서 도시바 디바이스·스토리지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담당 야마모토 매니저는 미국 대형 클라우드 업체 임원에게 “저장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HDD 수요가 20%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하자 이 임원은 “그 정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데이터센터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엔비디아가 만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다. 엔비디아의 최신 AI 서버 ‘베라 루빈’은 서버랙 하나에 GPU 칩 72장을 싣는데, 랙 한 대에 부품이 130만개 들어간다. 자동차 한 대에 쓰이는 부품 3만개와 비교하면 43배 수준이다. 이전 모델과 비교해도 2.2배 늘어난 부품 수다.
◇특수 확산…반도체 넘어 건설·부동산까지
AI 데이터센터 특수는 핵심 부품에서 주변 부품으로 번지고 있다. GPU에서 시작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중앙처리장치(CPU)로 옮겨갔고, HBM 수급이 빠듯해지자 키옥시아 등의 낸드플래시를 쓰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주목받았다. 다음 차례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다. 미국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AI 서버 한 대에 MLCC가 44만개 필요한데, 기존 서버의 10~15배에 달한다.
닛케이가 부품별 시장점유율 상위 기업을 정리한 결과 공급망은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의 핵심 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AI 반도체는 엔비디아·AMD·브로드컴, CPU는 인텔, HDD는 웨스턴디지털·시게이트테크놀로지가 꼽혔다. 인쇄회로기판과 집적회로(IC) 패키지 기판은 대만 유니마이크론 등이, 냉각·전력 설비는 미국 버티브홀딩스와 프랑스 슈나이더일렉트릭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HBM·D램과 낸드·SSD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MLCC에 삼성전기, 냉각용 칠러에 LG전자가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는 부품별 대표 기업만 추린 것으로, 실제 공급망에 발을 담근 기업은 훨씬 많다.
데이터센터는 AI를 담아둔 서버 무더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련 산업이 폭넓게 얽혀 있다. 이에 따라 발전기와 무정전전원장치(UPS), 광섬유, 냉각팬과 배관은 물론 설계·운영에 필요한 건설·부동산까지, 그동안 디지털 제품의 덕을 보지 못했던 업종에도 사업 기회가 열리고 있다.
◇“투자 부족이 과잉투자보다 위험”
일본에서는 이미 산업 지형 변화가 시작됐다. 미네베아미쓰미는 베어링 생산 능력을 월 4억개에서 2030년까지 5억개 이상으로 늘리기로 하고, 동남아시아 공장에 500억엔(약 4588억원)을 들여 새 건물을 짓는다. 착공도 1년 앞당겨 올해 말로 정했다. 가이누마 요시히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데이터센터용 베어링 매출이 3~4년 전의 약 3배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자동차용 배관 부품을 만들던 산오공업은 AI 서버 냉각용 부품으로 사업을 갈아탔다.
시장에서는 이들 부품·설비 기업이 앞선 기술 전환기의 승자들처럼 크게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퍼지면서 애플·아마존·메타 등이 급성장했고, 전기차 보급과 함께 2차전지 업체들이 몸집을 불린 것과 같은 흐름이라는 것이다. 투자 규모가 역대 최대인 만큼 낙수 효과도 그만큼 클 것이란 계산이다.
투자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는 “투자 부족이 과잉투자보다 훨씬 위험이 크다”고 반박했다. 철도와 전력, 인터넷 같은 사회 기반시설 경쟁에서 투자를 주저한 쪽이 도태됐던 역사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19세기 철도망과 20세기 초 송전망이 수십년에 걸쳐 퍼진 것과 달리, 데이터센터 투자는 짧은 기간에 지구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