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문제는 이 효과가 섭식장애를 겪었거나 겪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유혹이 된다는 점이다. 영국 런던에서 아이 돌보미로 일하는 몰리 테일러(23)는 2024년 가을 이 약을 맞기 시작했다. 과체중은 아니었지만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빠른 효과에 놀랐다. 주변에서 예뻐졌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내가 뭘 먹는지, 열량이 얼마인지, 이게 살 빠지는 걸 막지는 않을지 점점 걱정하게 됐다”며 “그때부터 거식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거식증은 섭식장애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다. 미국 거식증·관련장애협회에 따르면 아편유사제 중독에 이어 두 번째로 치명적인 정신질환이다.
테일러는 지난해 5월 결국 병원에 실려갔다. 그는 병원에 비만치료제를 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계속 살을 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올해 1월 주사를 끊고 일주일에 여러 차례 섭식장애 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자리가 나는 대로 입원 치료도 받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섭식장애 치료기관 이팅디스오더센터를 세운 제니퍼 롤린은 자신도 오래전 거식증에서 회복했다면서 “당시 이 약이 시장에 있었다면 나도 분명 구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드카펫에 선 유명인들이나 살이 빠졌다고 자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환자들 상당수가 크게 흔들린다”고 전했다.
미국 여성 제이미 세이어(48)도 체중 감량을 위해 GLP-1 계열 약을 처방받았다. 그는 “처음엔 기적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력이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졌으며 저혈당으로 정신을 잃는 일까지 겪었다. 보험 적용이 끊기자 중국에서 가루 형태의 약을 사들여 집에서 직접 타 복용했다. 그사이 식사는 며칠씩 굶다가 특정 요일에만 먹는 식으로 극단화됐다. 결국 그는 2024년 7월 미 코네티컷주의 입원 치료센터에 들어가 ‘비정형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 이어 굶주린 몸이 갑자기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재영양증후군까지 확인됐다. 세이어는 그 치료가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렌프루센터의 샘 디캐로는 저체중이 아니면 적게 먹어도 괜찮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체질량지수(BMI)상 저체중이 아니면서 거식증의 특징을 모두 보이는 비정형 거식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영양 부족은 몸의 모든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처방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원격진료가 퍼지면서 약을 구하기가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테일러는 처방을 받으려고 자신이 더 뚱뚱해 보이도록 손본 사진을 낸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제시카 시어 전미섭식장애협회 최고경영자(CEO)는 일부 의료진이 처방 전 섭식장애 병력을 확인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제약사들은 미용 목적의 체중 감량에 자사 약이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노보노디스크 대변인은 “적응증 기준에 맞는 환자에게 처방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일라이릴리 대변인은 “환자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섭식장애 관련 자료를 포함해 데이터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이들 약에는 섭식장애 병력이 있으면 쓰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없다고 WSJ은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