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무력충돌 반복 막으려면…헬싱키 프로세스 같은 대화 체제 필요"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21일, 오후 10:0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의 두 정상이 중동에도 냉전 시절의 ‘헬싱키 프로세스’ 같은 다자 대화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 과정이 신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공동 기고문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데 신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과정 그 자체가 신뢰를 만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그 길이 얼마나 길고 험난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도 “중동을 위한 새로운 헬싱키를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이 근거로 든 것은 1970년대 유럽의 경험이다. 1960년대 후반 유럽은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분단 상태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세계는 핵 재앙 직전까지 갔고,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을 짓밟았다. 베트남 전쟁은 강대국들이 대리전을 벌일 준비가 돼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로 그 불신의 한복판에서 20세기의 가장 야심 찬 협력 안보 구상이 태어났다. 197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국, 중립국과 비동맹국 등 35개국이 한자리에 모였고, 1975년 8월 헬싱키 최종의정서로 결실을 맺었다. 동서 진영이 국경 존중과 무력 불사용, 인권 보호 등에 합의한 이 의정서는 이후 상설 협의체로 발전해 1995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자리 잡았다. 회원국들이 분쟁을 예방하고 선거 감시와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루는 기구다. 냉전 데탕트(긴장 완화)의 이정표였던 셈이다.

두 대통령은 지금 중동 역시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의 민간인이 가장 큰 피해를 봤고, 이란 국민은 강화된 억압에 숨이 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지정학적 경쟁의 화약고가 돼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각국 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스라엘 사회는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이 남긴 트라우마로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가자지구 주민들은 참혹한 인도적 재앙을 견디고 있으며,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정착촌 건설로 생계와 정치적 희망이 짓밟히고 있다고도 했다.

이들은 파키스탄과 카타르 등의 지원으로 마련된 미국·이란 간 합의 틀이 취약하지만 긴장 완화와 봉쇄의 항구적 종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호르무즈해협의 위기 관리를 넘어, 참여 범위와 논의 주제 모두에서 더 큰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역내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모든 분쟁과 반목에도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이 지역이 지금 여기서 합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사람은 헬싱키의 진수 역시 모든 당사자가 각자의 우선순위를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와 공통분모를 찾고 신뢰 구축이 가능한 영역을 시험한 데 있었다며, 그 덕분에 대립 요소를 협력으로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35개국이 참여했듯, 중동에서도 역내 모든 국가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역외 국가들도 2015년 이란 핵합의처럼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스투브·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자신들의 제안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중동은 냉전기 유럽보다 훨씬 복잡하며 종교와 민족, 이념의 단층선이 깊게 파여 있고, 대리전과 영토 분쟁이 외교로 풀리지 않는 적대의 관성을 굳혀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지도자는 “사정이 복잡하다는 것은 한 번도 대화를 반대할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된 적이 없었다”며 “(오히려) 언제나 대화해야 할 가장 강력한 근거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협력 안보를 지향하는 과정이 없다면 중동은 더 쪼개져 거래적이고 불안정한 동맹과 대항 동맹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정상은 헬싱키 최종의정서 첫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맺었다. 참가국들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개선하고 강화하며 평화와 안보, 정의, 협력에 기여하려는 정치적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는 대목이다.

스투브·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신뢰가 아니었다. 반목의 해소도 아니었다. 그저 분쟁을 대신할 구조화된 대안을 찾겠다는 정치적 의지였다”며 “그런 정치적 의지가 중동에 존재한다면 의미 있는 길로 바꿔낼 수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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