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에 대박난 日기업…놀랍게도 변기·조미료 회사였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22일, 오후 05:2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의 수혜주 하면 반도체 기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 일본 증시에서 가장 큰 AI 수혜 기업은 변기와 유리섬유, 조미료를 만드는 회사들이었다. 칩은 한 장도 만들지 않지만, 수십년간 본업에서 쌓은 소재 기술을 반도체 공급망에 접목한 결과다.

22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따르면 고급 비데 일체형 변기로 유명한 토토의 주가는 올해 들어 78% 올랐다. 섬유·유리섬유 업체 닛토보는 63%,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는 61% 상승했다. 세 회사 모두 지난 3월 31일 끝난 회계연도에서 반도체 수요와 맞물린 사업이 급성장했다.

일본 기후현 도키시에 있는 변기 제조업체 토토의 공장에서 직원이 비데 일체형 변기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AFP)
일본 기후현 도키시에 있는 변기 제조업체 토토의 공장에서 직원이 비데 일체형 변기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AFP)
◇변기 굽던 도자기 기술로 반도체 장비 부품 생산

토토가 만드는 것은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세라믹 정전척이다. 이는 회로 모양대로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정전기 힘으로 붙잡아 고정하는 부품이다. 웨이퍼가 미세하게라도 흔들리면 회로가 어긋나기 때문에 고온을 견디면서도 변형되지 않는 세라믹이 필요하다. 변기를 빚어온 도자기 기술이 여기에 쓰였다. 토토는 1988년부터 이 부품을 만들어왔고, 자사 세라믹이 첨단 칩의 수율, 즉 정상 제품이 나오는 비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토토의 첨단세라믹 부문은 지난 회계연도 매출이 34%, 영업이익이 42% 늘었다. 사물인터넷(IoT)과 디지털 전환, AI, 데이터센터에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요가 몰린 덕이다. 이익률도 주력인 주택설비 부문보다 높았다. 100년 역사를 지닌 주택설비 부문의 매출과 이익이 줄었는데도 회사 전체가 성장한 것은 사실상 첨단세라믹 덕이었다.

다만 토토는 본업을 접을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는 CNBC에 보낸 이메일에서 “한 부문이 다른 부문보다 우월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첨단세라믹은 고성장 영역이지만 40년 역사에서 오랜 적자를 견딘 끝에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황은 변동성이 큰 반면 주택설비는 재무의 안정적인 토대가 되는 만큼, 주력 사업에서 손을 뗄 계획은 “절대 없다”는 설명이다.

◇유리섬유 뽑던 회사, AI 서버 기판 강자로

닛토보의 무기는 유리를 실처럼 뽑아내는 기술이다. 1984년 내놓은 특수 유리섬유 ‘T글라스’는 인쇄회로기판(PCB)과 전자부품에 쓰인다. 열을 받아도 잘 늘어나지 않고 전기 신호 손실이 적은 것이 강점이어서, 여러 칩을 한 기판에 얹는 AI 서버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 수요가 늘수록 함께 잘 팔린다.

지난 회계연도 닛토보의 전자소재 부문 매출은 20.4%, 영업이익은 39.7% 늘었다. CNBC 계산에 따르면 이 부문이 회사 전체 매출 증가분의 약 91%를 책임졌다. 부문 이익 증가폭은 55억엔(약 500억원)으로, 회사 전체 영업이익 증가폭인 44억엔(약 400억원)보다 컸다. 전자소재를 뺀 나머지 사업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뜻이다.

닛토보는 T글라스 등 전자소재가 향후 10년 성장의 “기둥”이라며, AI 반도체 수요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인력 배치 방식까지 바꿔놓고 있다고 밝혔다. 유리섬유는 그동안 플라스틱을 보강하는 복합소재 등으로 쓰여왔지만, 이제는 전자소재가 “먼 미래까지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회사는 데이터센터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수요에 맞춰 증산에 나서겠다고 했다.

◇조미료 부산물서 나온 반도체 절연필름 핵심 소재

아지노모토의 경로가 가장 뜻밖이다. 조미료(MSG) 제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연구하며 쌓은 기술이 반도체 패키징용 절연 필름 ‘ABF’로 이어졌다. 1999년 시장에 나온 이 제품은 중앙처리장치(CPU) 등 고성능 반도체에 쓰인다. 칩과 기판을 잇는 배선이 층층이 쌓이는 구조여서 층마다 절연막이 필요한데, 패키징이 복잡해질수록 ABF의 역할도 커진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아지노모토는 AI와 5세대 이동통신(5G) 등 첨단 기술이 반도체 수요를 계속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지노모토는 ABF 실적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ABF가 포함된 ‘헬스케어 및 기타’ 부문은 전자소재 매출에 힘입어 지난 회계연도 매출이 약 4%, 사업이익이 45.1% 늘었다. 이 부문은 회사 전체 이익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매출과 이익 모두에서 냉동식품 부문을 앞질렀다.

아지노모토는 “고부가가치·첨단 분야에서 ABF를 중심으로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사 역시 식품 사업과 ABF가 속한 아미노사이언스 사업의 “1대 1 균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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