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벌었다"…트럼프, 정유업계 정조준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04일, 오전 04:29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그들은 너무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엑손모빌과 셰브론을 겨냥해 이같이 말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두 정유업체가 지난 2분기 나란히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자 직접 십자포화를 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셰브론도 너무 많은 돈을, 엑손모빌도 너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이들은 그중 일부를 대중에게 돌려줘야 하고, 소비자 가격인 소매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블룸버그와 CNBC에 따르면 셰브론의 2분기 순이익은 120억달러(약 17조1650억원)로 전년 동기 25억달러 대비 400% 가까이 급증했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1억3200만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 실적이다. 엑손모빌 역시 순이익이 145억달러로 전년 동기(71억달러)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블룸버그는 정유업체들의 실적 호조 배경으로 미·이란 전쟁 여파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가격과 정제마진이 동반 급등한 점을 꼽았다. 2분기(4~6월) 미국 원유 평균 종가는 배럴당 약 92달러로 1분기보다 27% 높았다.

◇워스 CEO 인터뷰에 발끈…“행정부 공로 왜 안 밝히나”

논란의 발단은 마이크 워스 셰브론 최고경영자(CEO)의 언론 인터뷰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워스 CEO가 폭스비즈니스에 출연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반응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그(워스)가 유일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천재적인 통찰력과 힘, 안정성이 없었다면 석유산업도, 우리나라 자체도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들은 마이크와 셰브론을 베네수엘라에서 쫓아냈지만, 이제 그들은 돌아왔고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강해져 큰돈을 벌게 될 것”이라며 “다른 정유회사들도 마찬가지다…소비자(소매!) 기름값을 당장 내려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셰브론은 제재 기간에도 베네수엘라에서 사업을 유지한 유일한 미국 메이저 정유사로, 트럼프 행정부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체포와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재개 움직임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로이터에 따르면 셰브론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07년 자국 내 석유 프로젝트를 국유화했을 때도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당시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마이크 워스 셰브론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마이크 워스 셰브론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갤런당 4달러 돌파…중간선거 앞두고 압박 수위 최고조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평균 소매 휘발유 가격은 지난 7월 갤런(약 3.8리터)당 4달러를 다시 넘어섰다. 중동 분쟁이 5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정제 설비 상당수가 가동을 멈추면서 원유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휘발유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워스 CEO를 비롯한 대형 정유사 경영진들의 경고다. 워스 CEO는 지난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에도 제품 가격에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란 전쟁과 생활물가 부담에 따른 고유가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말 사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격’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힌 뒤 국제유가는 급락했지만, 주유소 가격까지 바로 따라 내려가는 것은 아니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WSJ는 정유업계가 백악관발 공세에 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엑손모빌·셰브론·코노코필립스·옥시덴탈 등은 일단 비판을 감내하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고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이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통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WSJ는 또 셰브론이 미국 내 정유공장 5곳을 보유하고 있지만, 셰브론 브랜드 주유소 대부분은 독립 사업자가 소유·운영하고 있어 실제 주유소 가격 결정권은 정유 대기업의 손을 벗어나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주 발표된 엑손모빌·셰브론·발레로에너지·마라톤페트롤리엄의 실적은 지난 2월 전쟁 발발 이후 고유가와 높은 정제마진에 따른 수혜를 공통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발레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 이후 최고 분기 실적을 냈고, 셰브론은 최소 6년 만에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실제 정유사들의 가격 인하나 별도 정책 대응으로 이어질지, 정유업계의 ‘버티기’ 전략이 계속 통할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이란과의 휴전 협상 진전 여부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시점도 향후 정제마진과 유가 흐름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지난 3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 인근의 한 주유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의 모습이 담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3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 인근의 한 주유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의 모습이 담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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