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년 EU 제재 앞두고 'LNG 그림자 선단' 몸집 키워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04일, 오후 04:5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가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어 나르는 ‘그림자 선단’을 조용히 불리고 있다. 내년부터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LNG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데 대비해 중고 선박을 사들이고 자국에서 만든 배까지 처음으로 투입했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의심되는 모잠비크 선적 유조선 데이나호가 지난 3월 23일 프랑스 마르세유-포스항 인근 마르티그 앞바다에서 프랑스 해군의 감시를 받고 있다. (사진=AFP)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의심되는 모잠비크 선적 유조선 데이나호가 지난 3월 23일 프랑스 마르세유-포스항 인근 마르티그 앞바다에서 프랑스 해군의 감시를 받고 있다. (사진=AFP)
◇6개월새 중고선 8척…원유 수법 그대로 옮겨왔다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해운 데이터업체 윈드워드 집계 결과 최근 6개월 사이 최소 8척의 중고 LNG선이 판매된 후 러시아 화물을 실어 나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러시아의 선단 규모는 25척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에서 새로 건조한 배 2척도 포함됐다.

러시아는 2027년 규제가 조여들어도 이 선단을 앞세워 가스 수출을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원유 수출에서 써온 수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기도 하다. 서방 보험과 서류 체계 밖에서 움직이는 러시아의 원유 그림자 선단은 이미 1000척이 넘는다. 다만 가스선은 훨씬 복잡한 배여서 진입이 더뎠다. 이리나 미로노바 뉴에너지어드밴스먼트허브 선임연구원은 “원유 그림자 선단은 이란과 베네수엘라라는 선례가 있었지만, 제재 당시 가스 생산에서 그 정도 기술 수준에 도달한 나라는 없었다”며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U 회원국들은 올 상반기 시베리아 야말 공장 생산량을 거의 전량 사들였지만, 2027년부터는 러시아산 LNG를 일절 들여올 수 없게 된다. 노바텍의 아틱 LNG 2처럼 이미 별도 제재를 받는 시설도 있다. EU는 지난주 러시아인에게 LNG선을 팔 경우 브뤼셀에 신고하도록 했지만, 그리스의 거센 로비에 밀려 EU 선박이 제3국으로 LNG를 운송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신호 끄고 바다 위 환적…목적지는 중국뿐

수법은 원유 때와 판박이다. 그림자 LNG선은 두바이와 홍콩, 싱가포르 등에 세운 러시아 연계 페이퍼컴퍼니가 소유하고 편의치적 국가 국기를 단다. 위치 신호를 수시로 끊고, 바다 위에서 배끼리 화물을 옮겨 실어 원산지를 숨긴다. 최근 사들인 4척은 제재 대상 화물을 다루는 항구에서 물량을 실었고, 모두 러시아 국적으로 코스모스와 오리온, 메르쿠리, 루치라는 비슷한 이름을 새로 달았다.

즈베즈다에서 만든 첫 배 ‘알렉세이 코시긴’은 지난해 12월 국영 해운사 소브콤플로트에 인도돼 아틱 LNG 2 물량을 나르고 있다. 두 번째 ‘콘스탄틴 포시예트’는 이달 명명식을 가졌고, 4척이 더 건조 중이다.

러시아 LNG 시장은 민간기업 노바텍이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 통계당국에 따르면 야말과 아틱 LNG 2가 전체 생산량의 65% 이상, 국영 가스프롬의 극동 사할린-2가 나머지 30%가량을 차지한다. 제재 대상이 아닌 물량은 그리스 다이나가스와 일본 미쓰이OSK 등에서 빌린 배가 실어 나르지만, 서방 규제가 잇따르며 운송 수단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제재를 받는 아틱 LNG 2 물량을 사는 곳은 중국뿐이다. FT가 케플러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평균 선령 10년인 11척이 이 물량을 실어 나른다. 화물은 해상 중계기지에서 일반 LNG선으로 옮겨 실린 뒤 중국으로 향한다. 이들 선박은 모두 미국 제재 대상이며, 노바텍은 최근 2년 사이 한 척을 뺀 나머지 전부의 선주나 용선주가 됐다.

◇척당 3억달러·영하 162도…기술 장벽은 여전

다만 실행은 훨씬 까다롭다. 기업정보업체 S-RM의 셉티머스 녹스 이사는 “수법은 대체로 같지만 LNG 운송의 특성 탓에 실행 난도가 훨씬 높다”며 “원유처럼 낡은 배를 사서 굴리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LNG선은 가스를 영하 162도에서 액체 상태로 유지하는 화물창을 갖춰야 해 한 척 건조에 3억달러(4275억원)가량 든다. 러시아 생산시설이 북극권에 몰려 있어 얼음을 뚫는 쇄빙 선박도 필요하다.

기술 장벽도 만만치 않다. 컨설팅업체 드루리의 나빈 쿠마르 해운리서치 이사는 프랑스 GTT가 화물창 기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러시아의 자체 건조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봤다. GTT는 2023년 1월 EU 제재를 이유로 러시아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러시아가 자체 화물창을 개발하더라도 국제해사기구(IMO)와 선급의 승인을 받아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결국 중고 시장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고선 확보 경쟁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가스 해운사 엑스마르의 카를앙투안 사베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사가 중고 LNG선을 놓고 러시아 매수자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에 나오는 노후 선박이 많은데, 그중 일부는 러시아 선단으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는 아틱 LNG 2용으로 건조한 쇄빙 LNG선 6척이 제재에 걸려 인도되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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