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전문가들은 전력망 사업 지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손꼽히는 주민 반대와 인허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고 갈등을 직접 조정하는 ‘투트랙’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 왼쪽부터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이대연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설립이 본격화하면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요 지역까지 보내기 위한 송변전망의 적기 구축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로 손꼽힌다. 하지만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이 필요한 투자를 모두 부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달 초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김동철 한전 사장에게 전력망 확충 현황을 점검한 뒤 “AI시대에는 지금까지 예측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전력 수요가 필요할 것”이라며 한전의 재무 부담을 언급했다. 급증하는 전력망 투자 수요를 한전이 모두 감당할 수 있는지 점검하고 새로운 재원 조달 방식을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민간이 자금을 조달해 전력망을 건설한 뒤 한전에 넘기는 BT(Build-Transfer)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영국, 호주 등에서는 민간이 송전망을 건설하고 운영까지 담당하는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이 활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송전망 운영까지 민간에 맡길 경우 민영화 논란과 전기료 상승 우려가 불거질 수 있다. 이에 건설 과정에는 민간을 참여시키고, 완공 이후 운영은 한전이 담당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라는 평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영국처럼 민간이 송전망을 직접 운영하면 민영화 논란이나 망 이용료 인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민간이 자본과 창의력을 활용해 건설하고, 운영은 한전이 맡는 BT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참여는 한전의 인력 부족을 보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전 인력이 주민 설득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다.
이대연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현재 한전은 인력 부족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 민원 대응도 한전 단독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민간이 참여하면 인력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고, 민원 대응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민간 사업자의 참여와 함께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전력망이 AI와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인 만큼 국가 재정 투입을 확대하고, 주민 반대 등 갈등 조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상수도나 철도, 고속도로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지만 전력망에는 국비가 사실상 전혀 투입되지 않는다”며 “국가가 관심을 두고 재정을 지원하거나 적극적으로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한전에만 모든 책임을 맡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전력망 투자 재원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내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중앙재정과 한전 자체 투자, 국민성장펀드 등을 연계해 역할을 분담하는 중장기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면서다.
전문가들은 국회의 민간 참여 관련 법안 처리와 함께 송전 분야 인력 확충,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한 재정 지원, 갈등이 심한 구간의 지중화 확대 등 민간 참여와 정부 지원을 함께 추진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송전설비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한전이 모두 맡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송배전망 건설 주체를 다양화하고 국민성장펀드 등 정부 재원을 활용해 민간 투자를 뒷받침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