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시급한데…받은 예산도 못썼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10일, 오전 05:02

[이데일리 김영환 정두리 기자]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산업의 혈관인 전력망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하지만 송변전망 건설은 주민 반발과 지방자치단체와 갈등, 인허가 지연에 번번이 가로막히며 확보한 투자 예산마저 제때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데일리는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AI·반도체 시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전력망을 적기에 구축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편집자주]

“정 그렇게 할 말이 많으면 가리왕산 정상으로 와라.”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초기,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한전 직원들은 강원도 정선지역 번영회장과 대화를 위해 해발 1560m 가리왕산 정상을 올랐다. 제대로 된 등산 장비도 준비 못 한 채 허리까지 눈이 쌓인 산을 5시간 오르고 나서야 이들은 번영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설마 정말 올라올 줄은 몰랐다”던 번영회장은 그제야 송전선로 건설을 두고 한전 직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본격화하며 전력을 실어나를 전력망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작 확보한 예산조차 제때 쓰지 못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에피소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9일 이데일리가 확보한 한국전력의 송변전설비 투자 현황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최근 4년간 송변전설비 투자 예산 5500억원가량을 집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2025년 편성한 투자 예산은 총 11조 4255억원이지만, 실제 집행액은 10조 8765억원에 그쳤다.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에 막힌 전력망이 첨단산업 성장의 병목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전력망 사업이 지연되는 가장 큰 원인은 주민 반대와 지자체 갈등, 환경영향평가 장기화 등 인허가 문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54개 송·변전 사업 가운데 약 20개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 중 14개 사업은 주민 민원과 인허가 문제로 준공이 늦어지고 있고 택지조성지연이나 산단조성지연, 공기부족 등 기타 요인으로 인한 지연은 6건에 그쳤다.

전력망 지연은 곧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크다. 특히 AI데이터센터의 경우 100메가와트(MW) 이상의 전력을 요구, 일반 데이터센터(10~25MW) 전력의 4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2035년까지 AI 데이터센터 확충에 18.4기가와트(GW),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6.3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전 24기 규모의 발전용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AI데이터센터 설립이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이미 전력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AI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사용시설을 짓겠다는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전력망 여건상 실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최종 승인을 받는 경우는 522건 중 10건에 그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12차 장기 송변전계획 및 프로젝트를 고려하면 2042년가지 송전설비 규모가 현재보다 약 2배 정도까지 확대될 수 있다”라며 “특히 장거리 송전망은 가능한 빨리 건설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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