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흙 못 옮겨"…美청년들, 대학 대신 용접·배관 배운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18일, 오후 05:0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 기사로 일하는 아킬 쿠마르(34)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형 통신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2년 전 사내 자동화 조직이 갑자기 사라졌고,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엔지니어 업무를 인공지능(AI)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쿠마르 역시 해고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회사를 떠났고, 월 9000달러(약 1275만원)에 달했던 수입도 지금은 크게 줄었다. 그는 “애써 배운 것이 부정당한 기분”이라며 “AI가 일과 돈을 어디까지 빼앗을 셈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미국에서 AI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걷어내면서, 젊은 층이 현장 기술직으로 몰리고 있다. 대학 학위보다 몸으로 익힌 기술이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이다.

(사진=AFP)
(사진=AFP)
◇대학 대신 용접·배관…“AI는 흙을 못 옮긴다”

1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 동부 필라델피아의 커뮤니티칼리지(CCP)는 올해 용접·전기공사·자동차 정비 등 기술계 단기과정 입학자가 137명으로 1년 전보다 51% 늘었다. 캘리포니아주의 한 배관 기능훈련교도 생성형 AI가 퍼진 2년쯤 전부터 지원자가 50% 증가했다.

CCP에서 트럭 정비를 배우는 셀린 티암(19)은 고교 시절 수학을 잘해 경영계열 4년제 대학도 검토했지만 비싼 학비가 아깝다고 느껴 접었다. 그는 “AI에 이 업종의 일을 빼앗길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 직업훈련 책임자인 크리스 루이스는 “수료하면 바로 일할 수 있고 급여도 좋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수요가 늘어 이들 학교가 과정 규모를 키운 영향도 있다. 배관공 수요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증설이라는 ‘AI 특수’의 덕도 동시에 보고 있다. 배관 기능훈련교에서 교육을 맡은 브라이언 머피는 “사무직에서 옮겨오는 사람이 눈에 띈다”며 “예전엔 고교 교사가 학생에게 대학 학위를 따라고 조언했지만 지금은 손에 기술을 익히라고 지도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직종은 보수도 적지 않다. 현장 일로 큰돈을 버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가정용 조경업을 하는 체이스 갤러거(25)는 회사원인 부모와 달리 중학생 때 창업을 결심했다. 자기 집 마당에서 하던 잔디깎기를 사업으로 만들었고, 고교에 진학하는 대신 조경업 선배들에게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직원 15명을 두고 있으며 자신의 연 수입은 약 50만달러(약 7억원), 직원 연봉도 10만달러(약 1억 4000만원)를 넘는다. 그는 “조경업은 10년 뒤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AI가 흙을 옮길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내 직종도 타깃이었다”…흔들리는 화이트칼라

AI로 대체가 가능한 직종은 정반대 상황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5월 보고서에서 전 세계 노동의 4분의 1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지적했고, 골드만삭스는 3억명분의 일자리가 AI로 바뀔 것으로 추산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 대졸 청년층 실업률은 2023년 2월 4.0%에서 지난 5월 5.7%까지 뛰었다. AI가 잘하는 프로그래밍을 다루는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2024년 기준 7.0%로 더 높았다.

아마존에서 행사 운영을 담당하던 20대 여성은 올해 1월 28일 이른 아침 “앞으로 무엇에 집중할지 다시 검토해 일부 직무를 없애기로 했다”는 회사 메일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부터 전 세계 3만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리해고 통지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 AI로 경영효율이 높아지면 앞으로 몇 년간 직원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지난해 10월 1차 감원을 발표하면서 AI의 직접적 영향은 부인했지만, 이 여성은 “내 직종은 타깃이었다”며 “전부는 아니어도 AI의 영향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마존 외에도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의 인력 감축이 줄을 잇고 있다. 메타는 지난 5월 직원의 10%인 8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고 하반기에도 대규모 감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만 5000명을 감축한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국 내 직원 9000여명을 상대로 처음 희망퇴직을 받았다. 두 회사 모두 실적은 좋고 AI에는 거액을 계속 붓고 있다.

지난 5월 9일 미국 플로리다주 홈스테드의 직업훈련학교 '레벨5HVAC'에서 학생들이 냉난방공조 기술을 배우고 있다. (사진=AFP)
지난 5월 9일 미국 플로리다주 홈스테드의 직업훈련학교 '레벨5HVAC'에서 학생들이 냉난방공조 기술을 배우고 있다. (사진=AFP)
◇“AI를 해고 핑계로 삼아”…의심의 눈초리도

일각에선 실적 좋은 IT 대기업의 감원이 정말 AI 때문이냐는 의문도 나온다. 이미지 공유 서비스 핀터레스트는 AI 조직에 자원을 재배치한다며 다음 달 말까지 직원 최대 15%를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직 직원은 “AI는 해고의 핑계”라며 수익성을 좋아 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선 몰릭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부교수는 지난해 말까지의 노동시장을 보면 AI가 고용을 빼앗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면서도 “기업들 얘기를 들어보면 AI를 구실로 고용을 줄이는 사례는 분명히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이란 복잡한 작업의 집합체여서 이만큼이 AI로 대체된다고 잘라 말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이 AI를 내세워 인력을 줄이면 시대를 앞서가는 것처럼 보여 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술을 활용해 경영을 효율화하는 기업을 투자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