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도 트랙터도 멈출 판"…美 경유값 폭등에 트럼프 '중간선거 비상'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19일, 오전 10:18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에서 경유값이 치솟으면서 산업 현장과 소비자가 동시에 타격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새로운 악재다.

미국 텍사스주 포트스톡턴의 한 셰브런 주유소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럭이 기름을 채우고 있는 모습. (사진=AFP)
미국 텍사스주 포트스톡턴의 한 셰브런 주유소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럭이 기름을 채우고 있는 모습. (사진=AFP)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미국의 경유 소매가격은 갤런(약 3.8ℓ)당 5.47달러(약 7730원)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인 5.82달러(약 8230원)에 근접했다. 중동과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이 생산을 가로막고 세계 공급을 옥죈 결과다. 경유는 산업과 농업을 돌리는 필수 연료여서 경제의 혈액으로 불린다.

미국 내 경유값은 한 달 새 8% 올랐다. 원유값과 경유값의 차이를 뜻하는 ‘크랙 스프레드’는 최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공급 충격이 그만큼 깊다는 신호다. 이날 경유는 미국산 원유보다 배럴당 100달러(약 14만 1350원)가량 비싸게 거래됐다. 지난해 평균 격차의 3배가 넘는다. 크랙 스프레드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두 배 넘게 뛰었고, 이란과 미국의 협상이 멈춘 이달 들어서만 20% 넘게 올랐다.

경유값이 뛰면서 트럭 운송업자와 농가의 비용이 불어났고, 그 부담은 경제 전반으로 번질 위기에 놓였다.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고, 이미 빠듯한 미국 소비자를 더 옥죌 수 있다는 얘기다. 톰 클로자 걸프오일 수석 에너지고문은 “이미 위기다. 조용한 위기”라며 “경제 한복판에 꽂히는 보디블로와 같다. 꽤 극적인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료값 상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키우고 있다. 의회 다수당을 가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불만이 커지고 있어서다. FT 여론조사에서는 다수 유권자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형편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연료발 물가 상승은 미 국채 매도세로도 번지고 있다. 이는 국채 금리를 수년 만에 최고치로 끌어올려 미국인들의 대출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에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에너지팀은 에너지 시장의 교란을 줄이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왔다”며 “미국의 에너지 우위를 실현하고 비용을 낮추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경유값이 급등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다. 미국과 이란이 서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제한하고, 폭격으로 역내 에너지 시설이 잇따라 무너졌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을 무인기로 공격하면서 기존 공급난은 더 심해졌다. 세계 최대 공급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생산이 줄었고, 러시아도 수출을 조이고 나섰다.

미국 정유사들은 빈자리를 메우려 설비를 풀가동해 기록적인 물량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다만 재고가 줄고 있어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로버트 캠벨 에너지애스펙츠 애널리스트는 “중동과 러시아에서 정제 설비가 대규모로 멈춰 서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수출까지 줄면서 미국이 ‘최후의 공급자’가 됐다는 것이다. 값이 뛰어도 기업들은 사용량을 줄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 캠벨 애널리스트는 “경유는 산업 경제의 혈액이어서 그냥 끌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유 생산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전쟁이든 설비 정비든 허리케인 피해든 공급에 차질이 한 번 더 생기면 값이 걷잡을 수 없이 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케빈 북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 애널리스트는 “정제 시스템이 전속력으로 돌아갈 때는 생산자 하나하나가 중요해진다”며 “전시든 사고든 어떤 이유로 설비가 멈추든 공급이 크게 죌 수 있다”고 말했다. 클로자 고문도 “폭풍 위협 하나면 상황이 아주 험해질 수 있다”며 “갤런당 5달러, 6달러, 7달러 같은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나올 여지도 있다”고 했다.

경유값이 오른 시점도 문제다. 겨울을 앞두고 난방유를 사둬야 하는 가정이 많고, 소매업체는 연말 대목에 맞춰 재고를 채우며, 농가는 수확기를 맞는다. 존 보이드 전미흑인농민협회 회장은 FT에 “농가는 경유값 상승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데, 이 또한 이란 전쟁으로 비료값이 크게 오른 뒤에 벌어진 일”이라며 “내 트랙터는 100갤런쯤 들어가는데, 한 번 채우는 비용이 정말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급등한 경유값에 상당수 농가가 압류 직전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원유 공급난을 덜기 위해 전략비축유의 기록적인 국제 공조 방출, 이란·러시아산 원유 수송 제재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오고 유권자 불만이 커지면 수출 제한 같은 더 강한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 관계자는 그런 방안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북 애널리스트는 “값이 계속 높으면, 지난 4월 폐기됐던 나쁜 아이디어들이 10월에 다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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