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40·50대의 비극…거품 꺼진 뒤 사회 나와 임금 반등서 '소외'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19일, 오후 04:08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 도쿄의 한 패션회사 창고에서 20년 가까이 일해온 도리고에 아쓰시(50)의 연봉은 현재 약 360만엔(약 3190만원)이다. 소득이 조금씩 오르다 최근 회사가 상여금을 깎고 급여 체계를 바꾸면서 되레 줄어든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는 신입에게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채용 공고를 냈다. 도리고에는 “젊은 사람들이 더 나은 임금을 받는 건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런데 왜 내 임금은 올려주지 않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본이 수십년 만에 물가와 임금이 함께 오르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정작 그 온기를 받지 못하는 세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거품 경제가 꺼진 뒤 사회에 나온 40·50대, 이른바 ‘취업 빙하기 세대’다.

일본 도쿄 신주쿠역에서 시민들이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일본 도쿄 신주쿠역에서 시민들이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이코노미스트는 18일(현지시간) 1993년부터 2004년 사이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이 청년기에 이어 중년에도 다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졸 기준으로 1970년대생과 1980년대 초반생이 여기 해당한다.

이들의 처지는 바로 앞 세대와 극명하게 갈린다. 1980년대 거품기에 일본 기업들은 사람을 대규모로 뽑았다. 대학생 우편함이 채용 통지서로 가득 찼다거나 기업들이 고급 식사를 대접하며 구애했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거품이 꺼지자 모든 게 달라졌다. 경직된 고용 제도 탓에 기존 직원을 내보내기 어려웠던 기업들은 대신 신규 채용을 줄였다. 대졸자 구인배율은 최고 3배에 육박했다가 2000년 1 아래로 떨어졌다.

1999년 졸업한 나가이 도시히사는 증권사에 들어가려던 꿈을 접었다. 그는 “취업 활동을 하는 게 정말 어리석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같은 세대 상당수가 수십, 수백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소용없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라 인구 자체가 많았던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정규직을 얻지 못한 이들은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 밀려났다. 일본 노동시장은 법적 보호와 연공서열형 임금 인상을 누리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도 훨씬 적게 받다가 불황이면 가장 먼저 잘리는 비정규직을 뚜렷하게 갈라놓는다. 곤도 아야코 도쿄대 교수는 과거 남편 월급을 보태려는 주부들이 채우던 자리를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이들이 메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리터’와 ‘패러사이트 싱글’, ‘히키코모리’ 같은 말이 이때 퍼졌다.

시간이 흐르고 일손 부족이 심해지면서 상처는 일부 아물었다. 시모다 유스케 일본종합연구소 연구원은 빙하기 세대의 정규직 비율이 윗세대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금은 그렇지 못했다. 비정규직으로 오래 일한 사람은 정규직으로 옮긴 뒤에도 격차를 온전히 메우지 못한다. 정규직이 된 이들에게도 다른 벽이 있었다. 회사 윗자리를 거품기 입사자들이 차지하고 있어 승진이 밀렸다. 이직이 드문 일본에서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임금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의 임금 인상 흐름도 대부분 젊은 층에 돌아가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기업들이 신입을 붙잡으려 돈을 더 쓰는 반면, 이직이 적은 중년 직원의 임금은 올려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30대 대졸자의 명목임금은 지난해 5년 전보다 10~16% 높아졌지만, 50대 초반은 오히려 1.3% 줄었다.

문제는 노후다. 일본 연금은 생애소득에 연동되기 때문에 수십년간 눌려온 임금은 그대로 낮은 연금으로 이어진다. 구마노 이코노미스트는 “불황기에 성인이 된 사람은 남은 평생 그 불리함을 안고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곤도 교수는 상당수가 결국 생활보호에 기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활보호는 고령자를 오랜 기간 부양하도록 설계된 제도가 아닌 데다, 수급자의 의료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해 비용도 크다. 뒷세대 인구는 더 적어 부양 부담은 무거워진다.

주거도 문제다. 이 세대는 윗세대보다 집을 가진 비율이 낮은데, 일본 임대시장은 고령 세입자에게 문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에야 자산 형성과 주거를 아우르는 3년짜리 대책을 내놨다.

이코노미스트는 뒤늦은 대응이라며 “불황기에 사회에 나왔다는 우연 하나가 한 세대의 평생을 좌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훨씬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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