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AFP)
그가 꼽은 세 축은 △세계 무역 확대 △값싼 에너지에 기반한 제조업 △미국의 안보 우산이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규칙 기반 세계질서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런 변화들을 종합하면 유럽의 전후 성장모델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과거에 알던 형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무역 환경부터 달라졌다. 라가르드 총재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적으로 새롭게 도입된 무역 제한 조치는 2500건을 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유럽연합(EU)산 제품에 당초 20%의 기본관세를 제시했다가 무역합의를 통해 15%로 낮췄지만 철강 등 일부 품목의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안보 환경의 변화도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제공한 안보 우산 덕분에 유럽 기업들은 공급망의 회복력보다 효율성을 우선해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정학적 긴장이 커지고 경제적 의존 관계가 무기화되면서 기업의 판단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는 게 라가르드 총재의 진단이다.
그는 “경제적 의존이 무기화되거나 억지력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면 회복력에 대한 우려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직접 반영된다”며 “자본이 덜 안전하다고 인식되면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이는 생산과 소비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강조한 것은 AI다. 그는 유럽이 정보통신기술(ICT)이 확산한 첫 번째 디지털 혁명의 상업적 이익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은 첫 번째 디지털 혁명을 상당 부분 놓쳤다”며 “두 번째 디지털 혁명인 AI에서 같은 경험을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기술기업 격차는 크다. CNBC에 따르면 유럽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상장 기술기업 34곳의 합산 가치는 약 1조3700억유로(약 2214조원)다. 미국 ‘매그니피센트7’의 합산 시가총액은 23조달러(약 3경2028조원)를 넘는다.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설문조사를 인용해 유로존 기업들이 올해 전체 투자액의 약 9%를 AI에 투입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투자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기업들이 미국이나 중국 경쟁사에 맞설 정도로 규모를 키울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 라가르드 총재는 EU 어느 국가에서든 한 번 법인을 설립하면 단일 규칙 아래 역내에서 사업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EU Inc.’ 구상을 소개했다. 자본시장 통합을 통해 혁신기업의 자금조달과 성장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그는 “유럽은 이미 장기 성장을 강화할 많은 요소를 갖고 있다”며 유럽의 거대한 시장 규모를 실제 기업의 성장 규모로 전환한다면 혁신기업이 역내에서 성장하고 신기술 확산과 생산성 향상도 빨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