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말 바꾼 트럼프의 '이란 최후통첩'…이번엔 얼마나 갈까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21일, 오전 09:14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경제 작전”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폭격으로도, 협상 유인책으로도 이란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자 꺼내든 새 카드다. 다만 강경 발언을 쏟아낸 뒤 슬그머니 물러서는 이른바 ‘타코’(TACO·트럼프는 늘 겁먹고 물러선다) 행보를 반복해온 만큼, 이번 위협 역시 허세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체면 세우기”…폭격도 회유도 실패하자 꺼낸 소모전

CNN방송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이란을 겨냥해 내놓은 새 전략에 대해 사실상 체면 세우기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의 전쟁에 대해 “지금 상황이 아주 좋다고 본다”고 주장했지만, 개전 며칠 만에 승리를 선언했던 전쟁은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고 CNN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루스소셜에서 “어떤 나라를 상대로도 취해진 적 없는 가장 파괴적인 경제 작전”을 벌이겠다고 적었다. 미군의 폭격으로도 이란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고, 양해각서(MOU)에 당근을 담아 핵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던 시도마저 무산되자 방향을 튼 것이다. CNN은 이를 두고 셀 수 없이 많은 전술 변경과 방향 선회를 낳은 이 전쟁의 최신판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과의 모든 대화를 중단하고, 이란에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워주는 나라를 겨냥해 “원유 밀수, 스와프 라인, 현금 이체, 환전소, 선박 등록, 유령회사.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며 “당신들이 누군지 우리는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 측이 정치적 우군들에게 ‘경제 소모전 태세로 전환한다’고 알렸다고 전했다. 이란 경제를 무너뜨려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구상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론이 나온다. 이란은 수십년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제재를 견뎌온 나라다. 이스라엘 국방정보국에서 이란 담당 부서를 이끌었던 대니얼 시트리노비츠는 “압박을 받으면 이란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잘못 짚었다”며 “결국 이 압박 때문에 이란의 셈법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란이 아니라 트럼프 자신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셈법을 바꾸기에 앞서 자기 행동부터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란 경제를 실제로 파괴하려면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좀처럼 보여준 적 없는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란 역시 성과가 나오기 한참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지칠 것이라 보고 버틸 공산이 크다고 CNN은 내다봤다.

봉쇄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을 미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글까지 올렸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실제로 이란을 고립시키려면 걸프와 유럽,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효과적인 압박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루도빅 후드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수익원과 역내 대리세력을 차단하고,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인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가 급등과 자본 유출이 겹치면 은행 위기로 번져 정권의 장악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동맹 규합이 트럼프 행정부의 특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재러드 쿠슈너·스티브 위트코프 특사가 이끄는 미국의 대(對)이란 외교는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으로 동맹의 안보·경제 이익을 위협해놓고 참전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웠고, 최근에는 호르무즈해협 재개통 협상에서 이란 편을 든다며 오만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했다.

가장 강력한 카드인 중국 은행 제재에도 대가가 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있다. 올해 최대 외교 행사를 코앞에 두고 분위기를 깨기는 쉽지 않다.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도심 발리아스르 광장에서 한 남성이 대형 정치 선전물 앞에서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AFP)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도심 발리아스르 광장에서 한 남성이 대형 정치 선전물 앞에서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AFP)
◇버틸 것인가, 허세로 끝날 것인가

이란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인질 사태로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듯,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굴욕을 안기려 한다는 것이다.

이란 입장에선 미국의 중간선거 국면을 조용히 넘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을 방해할 정치적 이유도 있다.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호르무즈해협을 오가는 선박의 발을 묶을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이 성과를 지키려면 오히려 긴장을 더 끌어올리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선박을 겨냥한 드론·미사일 공격이 재개되면 미국 유권자들의 부담이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맞대응하면 위기가 깊어지고, 참으면 약해 보이는 상황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야당인 민주당에는 틈이 생긴다. 제임스 워킨쇼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국 국민이 주유소와 마트에서 대가를 치르는 이란과의 경제 소모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꺼내든 새 위협 전략에 대해 “세계는 늘 그랬듯 정치적 비용이 쌓일 때 그가 물러설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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