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다시 상승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 “끈질긴 인플레이션과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대규모 회사채 발행 등 여러 요인이 있으나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미국 정부 부채와 국채 공급 부담이 주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미국 재무부는 전날 미국 국가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40조달러(약 5경5000조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전날 미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재매입) 규모 확대 발표로 금리는 일시적으로 진정됐지만 하루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날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장 대비 약 4bp(1bp=0.01%포인트) 오른 5.24%를 나타냈다.
WSJ는 바이백 규모 확대에 대해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증가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증상에 대응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단기적으로 장기 국채의 수요를 늘려 금리를 낮출 수 있지만 재무부의 정책이 예측하기 어려워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미국 금융정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 오히려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사진=로이터)
이에 미 국채는 단순히 미국 정부의 재정을 조달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여유 자금을 보관하거나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보유하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기능했고, 세계 금융시장에서 수많은 거래의 가격 산정과 헤지, 담보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 같은 특별한 지위는 미 국채에 ‘안전 프리미엄’ 부여했다. 투자자들이 안전성을 이유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도 받아들인 덕분에 미국 정부는 다른 차입자보다 낮은 비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강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두드러졌다. 미국 정부의 차입이 급증했는데도 국채금리는 하락했다. 금융위기로 민간 차입이 급감했고 한때 안전하다고 평가받았던 AAA등급 모기지 증권의 위험성이 드러나면서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도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런 ‘호시절’은 팬데믹 이후 달라졌다.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상승하고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동시에 시장이 흡수해야 할 국채 물량까지 크게 늘어났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경제학자 리카르도 카바예로는 최근 연구에서 미 국채의 ‘안전 프리미엄’이 ‘흡수 프리미엄(absorption premium)’으로 변하고 있다 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미 국채의 안전성 때문에 투자자들이 낮은 금리를 감수했다면 이제는 넘쳐나는 국채를 보유하기 위해 오히려 추가 수익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국채 금리와 스와프 금리의 관계다. 역사적으로 미 국채 금리는 스와프 금리보다 낮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국채 금리가 스와프 금리를 웃돌고 있다. 카바예로는 국채 발행량이 늘면서 딜러들이 이를 거래하고 재고로 보유한 뒤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데 부담이 커진 결과로 해석했다.
장기채 보유에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추가 보상인 기간 프리미엄 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카바예로는 안전 프리미엄이 흡수 프리미엄으로 변한 것이 2015년 이후 약 2.5%포인트 오른 미 국채 금리 가운데 약 0.75%포인트를 설명한다고 추산했다.
미 국채 금리가 디폴트 위험을 감안하고도 AAA등급 회사채보다 낮았지만 2022년 이후 이러한 격차가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때 미 국채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주가가 급락하면 안전자산을 찾는 자금이 국채로 몰리면서 국채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하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주가 하락과 국채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늘었다. 시장 불안이 반드시 미 국채 매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WSJ는 이를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과거만큼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하지 않는 징후라고 짚었다.
미국의 재정과 물가 여건도 국채시장에는 부담이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 가운데 미 의회예산국(CBO)은 올해 재정적자가 2조 1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한때 제시했던 3% 목표의 두 배 수준이다.
민간에서도 채권 공급이 급증하고 있다. 바클레이스는 올해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이 사상 최대인 1조 9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상당 부분이 AI 데이터센터와 관련 인프라 구축에 투입될 자금이다. 미 국채가 투자자 자금을 놓고 기업채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베선트 장관이 바이백 규모 확대, 엔화 공동 대응 등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해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제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1970년대 이후 민주·공화당 행정부를 막론하고 미 재무부는 시장 상황에 맞춰 국채 발행 시점을 조절하기보다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발행을 핵심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번 바이백 확대는 직전 분기별 국채발행계획이 발표된 지 불과 2주 만에 전격적으로 나왔다. 발표 직후 장기금리가 급락하는 단기 효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하루 만에 상당 부분 되돌려졌다.
WSJ는 국채 발행과 바이백마저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결국 투자자들이 이러한 불확실성을 보상받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RBC캐피털마켓의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인 블레이크 그윈은 투자자들이 “이처럼 커진 추가적인 불확실성을 반영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무부가 장기물 대신 단기 국채 발행에 더 의존하는 것도 위험 요인이다. 단기물은 만기가 빨리 돌아오는 만큼 차환을 자주 해야 한다. 향후 금리가 더 높아진 상태에서 만기가 돌아오면 정부가 더 높은 비용으로 빚을 다시 내야 하는 차환 위험 이 커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