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북한의 태도는 더 노골적이다.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화답하기는커녕 단거리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했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축소한 훈련을 조롱하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개 비난도 이어갔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앞세워 한국을 협상 상대에서 밀어냈다. 여기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까지 조현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을 ‘두 국가’로 표현했다. 북·미가 직접 마주 앉고 중국마저 남북을 별개의 국가로 바라본다면, 한국이 자임해온 ‘페이스메이커’ 역할은 도로무공(徒勞無功)에 그칠 것이다.
7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입지는 더욱 불리하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했고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와 병력을 제공하며 실전 경험까지 쌓았다. 중국이라는 전통적 우군도 있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 협상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외교·군사적 공간이 훨씬 넓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대화를 유례없이 서두르고 있다. 북미 대화의 목표가 여전히 비핵화냐는 질문에는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핵보유를 전제로 한 핵 동결·군축 협상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 지위 인정으로 이어진다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물론 동북아 안보질서까지 흔들릴 수 있다.
◇북·미 협상서 우리 목소리 분명히 내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고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회담 추진과 연합훈련 축소가 김정은에게 미국이 협상 성과에 절박하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훈련 축소를 “아무것도 얻지 못한 순수한 양보”라며 2018년보다 더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주한미군 철수나 대북 제재 완화까지 추가 양보 카드가 된다면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같은 흐름에서 실제로 ‘패싱’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한국을 조롱하고 미국은 한국과 별개로 대북 접근을 추진하고 있다. 외교적 역량과 협상력 그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채 ‘페이스메이커’는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북미 대화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고 북핵 문제의 출구를 찾으려면 대화는 필요하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한국의 이해를 관철하고 비핵화 원칙과 확장억제를 지키면서 협상 테이블을 주도해야 한다. 안보는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름뿐인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북미 협상에서 우리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