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으면 7600만원"…'출산율 0.87' 싱가포르의 승부수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24일, 오후 06:4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싱가포르 정부가 신생아가 태어나면 아이 한 명당 17세까지 7600만원 넘는 돈을 주기로 했다. 출산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지자 세계에서 가장 후한 축에 드는 지원책을 내놓은 것이다.

싱가포르의 한 가정에서 두 남매가 함께 있는 모습. (사진=AFP)
싱가포르의 한 가정에서 두 남매가 함께 있는 모습. (사진=AFP)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전날 밤 국경일 연설에서 신생아 1인당 1만싱가포르달러(약 1089만원)의 ‘출산축하금’을 주고 종일제 보육 보조금을 늘리는 등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지원책에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나는 아이에게 매년 2000싱가포르달러(약 218만원)의 아동 크레딧을 주고, 5000싱가포르달러(약 545만원)의 ‘첫걸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기에 출산축하금까지 더하면 17세가 될 때까지 받는 직접 지원금이 7만싱가포르달러(약 7624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가장 큰 환호가 터진 대목은 주택이었다. 자녀가 있거나 임신 중인 가정은 공공주택 청약 때 아이 수만큼 추첨권을 더 받는다. 경쟁이 치열한 공공주택 당첨 확률이 크게 올라가는 셈이다. 육아휴직 일수도 늘어난다.

배경에는 심각한 저출산이 있다. 싱가포르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7명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인구 610만명 가운데 자국민은 60%에 불과하고, 초고령사회 진입도 눈앞이다.

싱가포르는 1987년 인구정책을 뒤집은 뒤 40년 가까이 돈을 쏟아부었다. 결혼·출산 지원 예산은 2000년대 초 5억싱가포르달러(약 5446억원)에서 8억싱가포르달러, 16억싱가포르달러, 20억싱가포르달러로 계속 불어나 누적 40억싱가포르달러(약 4조 3567억원)를 넘어섰다.

정부는 지난 2월 올해 회계연도에만 관련 사업에 70억싱가포르달러(약 7조 6243억원)를 쓰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출산율 그래프는 한 번도 반등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돈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한다. 샘 얌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원 부학장은 부모들이 아이를 갖는 대신 포기해야 할 삶의 질과 자유를 저울질한다며 “이들이 말하는 건 주머니 속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아이가 있거나 계획 중인 사람들에게 주는 지원을 두고 “정부가 이미 표를 사서 극장에 앉아 있는 모두에게 요구하지도 않은 5달러를 돌려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웡 총리의 연설 며칠 전 공개된 유고브 조사에서는 18~44세 싱가포르인의 3분의 1가량이 어떤 정부 정책도 출산 의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저렴한 유아교육과 보육은 출산을 유도할 수 있는 조치 1순위로 꼽혔다.

당사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오는 11월 첫아이를 기다리는 제이슨 간(28)은 “재정적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면서도 “저처럼 곧 부모가 되는 사람에게는 좋지만 이게 장기적 해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잉이(24)는 “우리 중 일부는 아이를 낳아 그저 쳇바퀴 도는 경쟁에 밀어넣고 기계 부품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며 “늘 남들을 따라가야만 한다”고 했다.

웡 총리는 한계도 인정했다. 그는 싱가포르가 자국민 다수를 유지하면서도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며 “앞으로 전체 인구도, 노동력도 더 천천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저출산은 싱가포르뿐 아니라 아시아 전반의 문제다. 중국 출생률은 지난해 사상 최저로 떨어졌고 일본 출산율도 최저치를 새로 썼다. 대만은 지난 5월 6~18세를 대상으로 정부 보조 투자계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출산율은 결혼이 회복 조짐을 보이며 2년 연속 올랐지만 0.8명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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