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미국의 가장 가깝고 오랜 동맹이었던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보복관세를 감수하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최후통첩에 굴복하지 않고 있다면서, 트럼프 2기를 규정해온 ‘굴복의 시대’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사진=AFP)
카니 총리는 지난주 미국과의 무역협상 결렬을 알리는 연설에서 “미국은 우리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며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캐나다 지도부가 “줄을 서지” 않으면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내년 1월부터 캐나다산 자동차와 철강에 매기는 관세를 50%로 올리겠다고 위협했다. 이날은 카니 총리를 “약하고 무능한 총리”라고 부르며 온타리오호의 이름을 ‘아메리카호’로 바꾸겠다고 했다.
백악관은 캐나다의 셈법이 틀렸다고 본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경제 규모가 캐나다의 12배, 인구는 7배라며 “캐나다의 태도는 저항이라기보다 단기적 어리석음에 가깝다”고 깎아내렸다.
각국 지도자들은 이 대치를 지켜보고 있다. 미 국무부 출신인 제러미 샤피로 유럽외교협회(ECFR) 연구원은 “이제 대부분은 트럼프식 공격 앞에서 물러서면 더 많은 요구를 부를 뿐이라고 믿는다”며 카니 총리가 대응의 본보기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캐나다만이 아니다.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 동참 요구를 거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가 내놓은 가자지구 구상을 정면으로 물리쳤고, 걸프 아랍국들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계획을 접게 만들었다.
전환점은 올해 초 그린란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손에 넣겠다며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내비치자, 유럽 정상들은 달래는 대신 공개적으로 맞섰다. 일부는 소규모 병력을 보내 훈련까지 벌였다.
샤피로 연구원은 “그린란드는 유럽 주권 자체에 대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전환점이 됐다”며 유럽인들이 그때 트럼프의 요구에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매슈 크로니그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도 “나토 동맹국이 다른 나토 동맹국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것은 선을 넘은 일”이라고 짚었다.
다만 유럽도 전면전은 원하지 않는다. 국방비 증액 약속은 지키고 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란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미군의 자국 기지 사용은 허용하고 있다.
◇미국 안에서도 흔들리는 장악력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돌아온 지난해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득표율 49.9%로 강한 위임을 받지 못한 채 재선했는데도 기업 경영과 대학 교육에 일일이 개입했고, 의회 동의 없이 연방기관을 축소했다. 로펌과 대학, 언론사, 기술기업 억만장자들은 앞다퉈 그의 뜻에 맞춰 정책을 바꾸거나 거액의 합의에 응했다.
지금은 미국 내부에서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과 로펌은 백악관 요구에 서명하는 대신 거부하고 있고, 채권시장은 재정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낸 소송을 1600만달러(약 221억원)에 합의하며 굴복 사례로 꼽혔던 ABC방송은 방송 면허를 위협받자 결국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화당 안에서도 경고음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는 올해 경선에서 10곳이나 낙선했고, 이 가운데 6곳이 이달에 몰렸다.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지지율도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얕볼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했지만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연방대법원은 독립기관 장악부터 우편투표 규제까지 그의 행정권 행사에 잇따라 길을 터줬고, 토드 블랜치 법무장관 인준에서 보듯 의회 장악력도 여전하다.
미국 정치 저널리스트 제이컵 와이스버그는 “굴복의 대가가 올라갔다”며 예일대가 행정부와 협상에 나서자 비판이 쏟아진 일을 예로 들었다. 다만 그는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과거에도 조짐은 있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성급하게 앞서 나갔다”며 속단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변화의 열쇠는 지지율이라며 “지지율이 30% 아래로 내려가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은 이런 평가를 일축한다. 그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실제 여론조사는 대단하고 우리나라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우리는 이란을 포함해 모두를 상대로 이기고 있다”고 적었다. 경선 패배에 대해서도 “몇 안 되는 패배는 의리 때문이었다”며 “그들이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했지만 좋은 사람들이라 함께 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