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 없이 5시간 더 일해라"…독일 덮친 '주 35시간 폐지'

해외

이데일리,

2026년 9월 03일, 오전 09:3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독일 산업계가 주 35시간 노동제를 폐기하고 주 40시간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늘어나는 5시간에 대한 추가 수당은 주지 않는 조건이다. 1984년 금속노조의 7주 파업으로 얻어낸 성과를 40여년 만에 되돌리자는 주장이어서 파장이 크다.

독일 남서부 진델핑겐의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AFP)
독일 남서부 진델핑겐의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AFP)
◇“국제 기준으로 보면 독일 노동은 너무 비싸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르틴 브루더뮐러 메르세데스벤츠그룹 감독이사회 의장은 올여름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인터뷰에서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이곳의 노동은 너무 비싸졌다”며 “주 40시간제 복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주요 경쟁국들에 대한 생산성 우위”를 잃었다고 진단했다. 엔진톱으로 유명한 공구업체 슈틸 경영진도 같은 요구를 내놨다.

수치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일 제조업의 시간당 인건비는 49.50유로(7만 8000원)로 EU 평균 33.70유로(5만 3100원)보다 47% 높다. 헝가리(15.60유로·2만 4600원)의 3배가 넘는다. 노동조합이 자금을 대는 연구기관 IMK 조사에서도 노동자 산출량 대비 인건비를 뜻하는 단위노동비용이 2023년 이후 예년보다 훨씬 빠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수십년 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낸 것은 제조업의 붕괴다. 독일 산업생산은 2017년 말 정점을 찍은 뒤 15% 넘게 줄었다. 에너지 가격이 잇달아 뛰었고 중국과의 경쟁이 거세졌으며, 미국 관세와 전기차 전환 충격까지 겹쳤다.

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의 마르쿠스 베레트 글로벌 매니징 디렉터는 정치적 안정과 탄탄한 인프라, 숙련 노동자, 촘촘한 산업 집적지가 그동안 높은 인건비를 상쇄해줬지만 이런 강점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건비를 놓고 보면 (경쟁국과) 10%나 20%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어떤 경우엔 3배, 4배 차이”라고 말했다.

생산이 급감했는데도 제조업 고용은 훨씬 천천히 줄어 아직 650만명 수준이다. 하지만 베레트는 “개별 기업에서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제조업 고용은 50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독일에선 현재 매달 1만2000~1만50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진앙은 폭스바겐이다. 2024년 노조와 독일 내 일자리 3만5000개 감축에 합의한 뒤 목표를 5만명으로 늘렸고, 지난 7월에는 전 세계 10만명 감원과 독일 공장 4곳 생산 중단까지 검토 대상에 올렸다.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IG메탈은 당시 전국 사업장 12곳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 앞에서 직원들이 IG메탈 깃발을 들고 구조조정과 대량 감원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AFP)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 앞에서 직원들이 IG메탈 깃발을 들고 구조조정과 대량 감원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AFP)
◇“14% 더 일해도 인건비 그대로” vs “일자리만 줄어”

일자리를 지킨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시간 증가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마르틴 베르딩 독일 경제전문가위원회 위원은 수요가 줄면 내보낼 수 있는 파견직을 쓰는 식으로 높은 인건비를 버텨온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의 도전은 너무 커져서 이런 유연성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을 주당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되 임금을 그대로 두면 노동시간은 14% 늘어나는 반면 인건비는 변하지 않는다. 베르딩 위원은 노동시간 논쟁이 “상징적인 정치를 훨씬 뛰어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합원 220만명을 거느린 독일 최대 노조 IG메탈은 공장이 주당 35시간 제한에 발이 묶여 있다는 전제 자체를 부정한다. IG메탈에서 단체교섭을 총괄하며 메르세데스 감독이사회에도 참여하는 나딘 보구슬라프스키는 이미 노사 합의로 기업이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상당한 여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내가 아는 기업들에 흔히 묘사되는 경직된 35시간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는 맞춤형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논쟁의 핵심은 노동시간을 늘리면 일자리가 줄어드느냐, 아니면 지켜지느냐다. 보구슬라프스키는 1980년대 IG메탈이 35시간제를 위해 싸운 이유가 일감을 나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서”였다며 “거꾸로 40시간으로 늘리면 그 시간이 유급이든 무급이든 필요한 노동자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베르딩 위원 같은 경제학자들은 일감의 총량이 보장된 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에 달렸다고 맞선다. 생산 단위당 인건비가 낮아져야 해외로 빠져나갈 생산과 일자리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35시간제는 자동차·기계·철강 등에서 독일 노동자 약 5분의 1에게 적용되고 있다. 전 업종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37.8시간으로,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짧은 축에 든다. 다만 시간제 노동 비중이 높은 영향이 크다.

이 문제가 다음달 시작되는 노사 임금협상 테이블에 오를지는 불투명하다. 금속산업 사용자단체 게잠트메탈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논평을 거부했다. 베레트는 독일 산업이 처한 위기의 크기를 정치권과 여론이 아직 따라잡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닥쳐올 일에 대해 다른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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