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은 2005년 9월 7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회담 모습. (사진=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 후 63일 만인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했다. 그는 당일 관저를 나와 청와대 본관으로 출근해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하는 것으로 첫 복귀 행사를 가졌다. 오찬장에 들어설 때는 참모진들이 노 전 대통령 복귀를 환영하며 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사실상 집권 2기의 공식화였다.
그는 저녁엔 자신을 대신해 두 달 넘게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했던 고건 당시 국무총리와 만찬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고건 총리가 “큰 물을 건넜으니 이제는 말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며 사의를 표명하자 이를 수용했다.
◇盧, ‘여대야소’였지만…지지층까지 이반돼 국정 어려움
노 전 대통령은 하루 뒤 15일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정식으로 복귀 인사를 했다. 그는 “비록 탄핵에 이르는 사유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까지 모두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헌정사상 첫 탄핵소추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이루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곧바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한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의 국무총리 지명 문제를 두고 야당과 충돌했다. 야당의 반발에 더해 당내 소장파까지 반발하자 결국 노 전 대통령이 김혁규 카드를 포기하고 이해찬 국무총리를 지명·인선했다.
탄핵 전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국정운영에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단독 과반으로 정책 추진에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그는 임기 후반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으나 경제정책 등으로 인한 지지층 이반까지 이어지며 진보·보수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지층의 이반이 계속되는 와중에 여당으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고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그는 한미FTA 체결,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의 성과를 이뤄냈으나, 여권의 지지율 하락 속에 결국 정권을 10년 만에 야당에게 넘겨주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檢, 파면되자마자 강도 높은 朴 수사 진행
탄핵소추 이후 복귀한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인용으로 헌정사 첫 파면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고, 그로부터 92일 후인 2017년 3월 10일 헌재의 결정으로 파면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여당이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17.05%포인트라는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국민의힘이 약 9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것이다.
파면으로 대통령 권한을 모두 상실한 박 전 대통령은 이틀 후인 3월 12일 관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이동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저에 도착한 후 당시 여당과 지지자들과 인사한 후 사저로 들어가며 공식적으로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대통령 신분을 상실한 박 전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은 검찰 수사였다. 2016년 11월 3일 최서원씨를 시작으로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 및 기소되는 와중에도 대통령 불소추특권으로 출석요구 등에 응하지 않던 박 전 대통령은 파면 11일 만인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14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찰은 같은 달 27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같은 달 30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31일 새벽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은 도합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수술 등을 위한 형집행정지 기간을 제외하고 2021년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2021년 12월 31일까지 약 4년 9개월을 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