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인도·태평양 지역 외교장관들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우려하면서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ARF 의장성명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채택했다.
한·미·일·중·러 등이 참석하고 북한은 첫 불참한 이번 ARF 회의 의장성명에서는 최근 3년간 이어졌던 북핵에 대한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sation·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ARF는 “북한이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sation)를 끌어내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그동안 반발해온 ‘CVID’가 보다 낮은 수위의 ‘CD’로 표현이 바뀐 것이다.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북한 어민 6명을 소오한하는 등 남북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우리 측 수석대표로 ARF에 참석한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 역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등 이번 ARF 계기로 열린 양자, 다자 회담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대화재개를 위한 신정부의 노력을 설명해 왔다.
ARF는 “이번 회의는 최근 한반도 정세에 우려를 표명하고 비핵화된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당사국들 간 평화적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의장성명에서는 ‘대화 지속’(continue dialogue)을 강조했으나, 올해는 ‘대화 재개’(resuming dialogue)로 변화를 줘 남북 간 사실상 소통이 중단된 상황을 고려했다.
또 이전에는 의장성명 발표까지 최소 2∼3일이 소요됐지만, 이번에는 당일 발표돼 문안 협상 과정에서 마찰이 거의 없었음을 시사했다.
북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여러 문구의 주체가 지난해 ‘많은 장관들’이었던 반면, 올해는 ‘회의’로 정리됐다. 지난해만 해도 북핵 규탄 관련을 두고 한국과 외교전을 펼쳐왔던 북한이 이번 회의에 불참했고, 한국 역시 강도높은 규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2000년 ARF 가입 이래로 처음으로 올해 불참했다.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여파로 관계가 악화된 데 이어 3년 뒤 북한인 사업가 문철명씨의 미국 신병 인도 이후 완전히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한편 성명은 미국과 중국이 강하게 대립했던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부 장관들이 신뢰를 약화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며 역내 평화와 안보, 안정을 훼손하는 토지 매립 등의 활동과 심각한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이나 필리핀 등 구체적인 국가이름은 명시하지는 않았다.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이 1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5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외교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