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교·안보 부처 간 엇박자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통일부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띄웠지만,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은 선을 그으며 정부 메시지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실용외교 기조 속 '부처 간 자율성을 보장하되, 최종 메시지는 대통령실' 구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외교 컨트롤타워 조율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 기류 속 외교-통일라인 엇박자 신경전
19일 대통령실 등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그간 외교·안보 정책을 두고 '진영 논리가 아닌 국익 중심의 실용적 접근'을 강조해 왔다. 또 외교 메세지의 국익 영향을 강조하면서, 실용 외교 기조 하에서 부처 간 소통과 메시지 일원화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천명해 왔다.
다만 최근 북미 회담 가능성을 두고 정부 부처 내 의견 차가 발생하면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내 이견이 국익 실용 측면에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조만간 외교·안보 라인을 점검하고, 부처 간 발언 통제와 메시지 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북미 회담과 관련해 16일 공지를 통해 "현재 구체적인 진전 상황은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며 "정부는 북미 대화를 지지하며 필요시 적극 지원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심한다면 APEC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밝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일축한 셈이다.
앞서 정 장관은 15일에는 "공개된 자료와 포착된 징후들로 분석한 결과, 회동 장소는 판문점 북측 지역이 될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이 자리에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측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즉각 거리두기에 나섰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6일 기자들과 만나 "사실 알 수 없다. 그건 북미 사이의 일"이라며 "미국을 통해 파악하고 있지만, 저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우리 정부도 무관한 일은 아니지만,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위 실장 발언은 통일부의 '북미 회담 가능성' 언급을 차단하며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섣부른 예단에 제동을 건 조치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공식발표 전까지확정되지 않은 사안에는 신중히 대응하는 기조를 유지 중이다.
북미 회담 두고 메시지 일원화 필요성…"대통령실이 최종 결론 주도해야"
결국 이번 논란은 정보 해석 차이를 넘어 정부 내 '메시지 일원화' 과제가 다시 떠오른 사례로 꼽힌다. 통일부는 회담 가능성을 성을 강조한 반면 외교부·국가안보실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부처 간 온도 차가 대국민 메시지 혼선으로까지 이어진 탓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 안에 여러 시각이 공존할 수 있지만, 중요한 외교 현안에서는 이런 의견 차를 시너지가 나도록 하나로 묶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조율과 최종 결론은 대통령실이 주도해야 일관된 외교 메시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실은 북미 회담 등 APEC 관련 외교·안보 발언과 관련해 신중한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상대국과 관련된 외교적 결례를 예방하고, 설익은 입장표명이 오히려 관계 개선 기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특히 오는 30일 경주 APEC 정상회의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만큼 최대한 안정적 회의 운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북미 또는 미중 간 외교 이벤트가 성사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 파급이 예상된다는 점도 우리 정부가 각 사안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를 종합하면 APEC 정상회의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의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조현 외교부 장관은 APEC 정상회의와 관련해 "활발한 양자 정상외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 구축에 대한 우리나라의 의지를 보여주고 지지를 확보할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 대통령이 외교·안보 라인의 기강을 다잡으며 교통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일부와 안보실이 각자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대통령이 취사 선택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중요 사안에 있어선 엇박자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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