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APEC 회원국 21곳의 정상은 공동선언문인 ‘APEC 정상 경주선언’을 포함한 3건의 주요 성과문서를 채택했다. 그런데 이날 채택한 경주선언에는 그간 정상선언문에 통상 담겼던 WTO와 다자주의 지지를 확인하는 직접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역대 APEC 정상선언은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를 기반으로 WTO 체제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다자주의를 지향해 왔다. 이를 감안하면 경주선언이 최근 자유무역 쇠퇴 기조를 반영한 결과물임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다만 21개 회원국의 정상은 경주선언에서 “글로벌 무역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한다”며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의제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 시장 주도적인 방식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통합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점은 정확히 명시했다.
뿐만 아니라 경주선언문을 도출한 자체가 성과라는 점도 분명하다. 당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내세워 무역장벽을 세우는 상황이다 보니 정상들의 공동 성명 채택 불발 가능성까지 점쳐졌기 때문이다.
APEC의 공동성명은 21개 회원국의 ‘만장일치’(컨센서스)가 이뤄져야만 나올 수 있다.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나올 수 없고 대신 ‘의장성명’이 채택된다. 실제 미중 무역전쟁이 거셌던 트럼프 1기 시절인 지난 2018년 APEC은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보호무역주의’ 표현을 두고 이견이 이어졌고, 결국 공동선언을 채택하지 못한 채 의장국 성명(파푸아뉴기니)을 내는 데 그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아침 7시 30분까지 논의가 이어졌다”며 “무역과 투자에 대한 쟁점들이 있었지만 모든 회원국이 뜻을 모아 아시아-태평양이 전세계가 나아갈 길에 대한 의미있는 길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역시 “최근 무역·관세 등 둘러싼 미중간 강경 대치 흐름을 극복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문안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경주선언에서 사라진 ‘WTO 문안’은 장관급인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AMM) 공동선언문엔 포함됐다. 21개 회원 외교·통상 장관들은 이날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무역 현안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며 “우리는 WTO에서 합의된 규범이 글로벌 무역 촉진의 핵심임을 인식한다”고 밝혔다.
경주선언에서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의 성과를 향후 협력을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각료선언에 담긴 WTO 문안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물론, AMM 성명에 담긴 WTO 표현도 과거보단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지난해만 해도 AMM 성명은 “WTO가 그 핵심을 이루는 규칙 기반의 다자간 무역 체제를 지지한다”라 돼 있었지만 올해는 “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에 그치고 있다. 또 AMM 공동성명에 줄곧 반영돼왔던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이란 표현도 이번 성명에선 빠졌다.
한편 정상들은 경주선언과 함께 ‘APEC AI 이니셔티브’와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도 채택했다. 이 대통령은 AI 이니셔티브에 대해 “역내 모든 회원들이 AI 전환에 참여하고 그 혜택을 함께 누리기 위한 여러 정책 방향을 담았다”며 “혁신을 통한 경제 성장과 민간·정부·학계 등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촉진하고 AI 인프라 투자 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PEC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대한 공동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에 대해 이 대통령은 “APEC 최초로 인구구조 변화를 공동 핵심과제로 인식하고 정책 비전과 협력 방안은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