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당대포'…협치 없이 '내란 척결'만 외친 정청래 100일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1월 09일, 오후 06:56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이한 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위치한 유기견 보호소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그동안 관례적으로 해온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2004년 국회 입성 이후부터 줄곧 ‘선명성’을 강조해 왔던 정 대표는 거대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된 이후에도 ‘싸움꾼’으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행보였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 통합행보에 나서려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내에서도 ‘명청(이 대통령-정 대표) 갈등설’이 부각되고 있지만 정 대표 측은 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61%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내 다수 의원들의 공개 지지를 받았던 박찬대 의원(전 원내대표)을 여유 있게 제치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대의원 투표에서 뒤졌지만 강성층이 많은 당원과 국민 표심에서 크게 앞선 것이 승리 요인이었다.

‘강력한 당대표’를 표방했기에 정 대표는 당대표 수락연설과 첫 기자간담회에서부터 ‘내란 척결’을 내걸었다. 취임 당일 그는 국민의힘에 대해선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며 ‘위헌 정당 해산 심판’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야 관계 설정’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다. 여야 개념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정책적으로는 ‘추선 전 검찰·언론·사법 개혁 마무리’를 약속했다. 눈엣가시로 보는 검찰과 법원을 향한 파상공세를 예고한 것이다.

◇尹과 달리 ‘통합정치 복원’ 李대통령 시도 사실상 ‘물거품’

정 대표는 자신의 약속대로 ‘협치’가 아닌 야당과의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당대표 취임 후 관례적으로 진행하는 다른 정당 예방에서도 국민의힘을 제외했다. 국민의힘을 향한 ‘내란 동조 정당’이라는 식의 비판도 지속하고 있다.

이 같은 ‘강경 일변도’는 이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 행보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부터 야당 지도부도 적극적으로 만났다. 철저히 야당 무시로 일관한 윤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이 대통령은 여야가 모두 새 지도부를 맞이한 이후인 9월에도 정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초청해 회동을 가지며 ‘통합 정치’의 복원을 시도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정 대표를 향해 “여당이 더 많이 가졌으니까 더 많이 내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당부는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여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야당을 향한 여당의 말이 거칠어질수록 이 대통령을 향한 야당의 말 역시 거칠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고,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이 또다시 재연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대표의 ‘개혁’에 대해서도 당내에서조차 “너무 거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의 첫 단추인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 민주당의 타깃은 사법부로 변경됐다. 정 대표 스스로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사퇴 압박을 이어가는 등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에 대한 여당의 파상공세는 수개월 째 이어지고 있다.

여권 내에서 이 대통령 판결에 대한 비판, 사법개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상황이지만, 당내에서조차 공세의 수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대법원장을 세워두고 훈계하듯 질의를 하는 모습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며 “차분하게 잘못을 추궁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대법관 증원법 △법왜곡죄 △재판소원제 등 사법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입법을 ‘사회적 논의’ 없이 정기국회 내 입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법조계를 중심으로 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법조일원화, 로스쿨 도입 등의 사법개혁을 사회적 기구를 통해 4년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부작용을 줄였던 노무현정부 개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이다.

◇대통령실 “개혁 방향 동의하지만 과정 가끔 너무 거칠다”

대선 후보 시절 사법개혁을 ‘장기과제’로 언급했던 이 대통령과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이와 관련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난 6일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대통령이) 전반적인 말씀을 가끔 하신다. 개혁의 내용·방향에 대해선 동의하시는데, 과정이 가끔 거칠거나 이런 측면에 대해 걱정하시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8일 국회 운동장에서 열린 한국사진기자협회 주최 ‘2025 사진기자가족 체육대회’에 방문해 함께 웃으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행사장에서 의례적 인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곤 별도 회동 등은 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당청 간의 엇박자가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은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이었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5개 재판부가 헌법 84조의 불소추특권을 근거로 재판을 중단한 상황이지만, 느닷없이 당내 강경파와 지도부는 재판중지법 11월 입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 맞춤형 입법에 대한 비판과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결국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공개 브리핑을 통해 이를 제지하는 상황이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정 대표 측은 “이 대통령과 정 대표 관계는 S급”·“당과 대통령실의 역할이 다를 뿐”이라며 ‘갈등은 없다’는 입장이다. 당내에서도 ‘갈등’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한 재선 의원은 “갈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과잉 충성이 문제다. 위험하지 않은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선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대표 재선에 도전하려는 정 대표가 임기초 대통령과 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당 지지율이 답보상태인 상황에서 당내에선 정 대표의 거친 행보가 중도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칫 중도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릴 경우 이재명정부 1년 만에 치러지는 내년 6월 지방선거·재보궐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개혁 이슈로 국가적 이벤트 속에서도 이 대통령이 주목받지 못하고, 정 대표만이 부각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정부 성과가 부각돼야 할 시기인데, 당이 과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며 “‘쟤들 내란 세력인데 찍으실 건가요?’란 식의 선거전략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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