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잠에 발목 잡힌 팩트시트…이번주 발표되나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1월 09일, 오후 06:52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 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까지만 해도 대통령실은 “일주일 안에 나올 것”이라고 밝혔지만 열흘이 지난 현재까지 무소식이다.

정치권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 관련 문구 조정과 이에 따른 미국 내 부처의 추가 검토가 지연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주 안에는 발표가 이뤄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관세 협상과 관련한 일부 문안 조율이 남아 있지만, 더는 미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정부와 정치권의 관측을 종합하면 한미 양측은 원자력잠수함 관련 세부 문안 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가 늦춰졌다. 대통령실 안보실 관계자는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안보 파트 등은 지난 8월 정상회담 때 거의 완성된 상태”라면서도 “(10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추가로 반영해야 하는 요소가 있고, 미국 내 유관 부서에서 검토(review)하는 과정도 있다 보니 늦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반영해야 하는 요소’가 원자력잠수함과 관련된 것이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부인하지 않았다. 원자력잠수함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공개 발언에서 공식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력잠수함용 연료 재처리에 대한 승인을 요청했고, 이후 한국형 원자력잠수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9일 KBS 방송에 출연해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로 원자력잠수함 건조 문제 등을 거론했다. 안 장관은 “미 국무부, 상무부, 에너지부 등 여러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논의 단계에 대해서는 “거의 완성 단계”라며 “금명간 발표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원자력잠수함 건조 장소를 놓고 한미 간 이견이 갈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에게 “한국의 원자력잠수함이 미국(필리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내 조선소 건조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안 장관은 “우리 국내 기술과 설비가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하는 것이 여러 조건에서 부합한다”고 밝혔다. 원자력잠수함에 들어가는 원자로도 한국 기술로 자체 개발한다는 입장이다.

건조 장소 외에 건조 규모와 연료 공급 문제는 비교적 합의가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건조 규모는 미국의 버지니아급(7800톤) 원자력잠수함보다 작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연안 작전 중심의 임무, 핵탄두 미탑재 등 한국의 안보 수요에 맞춰 설계될 전망이다.

연료는 농축 수준이 20% 이하의 우라늄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연료 공급은 미국이 맡아 한국에 제공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통상 원자력잠수함에는 90% 이상 고농축 핵연료가 쓰이지만, 한미 원자력 협정을 대폭 개정하지 않는 범위에서 타협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원자력잠수함을 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동북아 안보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미국 내 협조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국립외교원장 출신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미국 측에서는 ‘원자력 협정을 먼저 개정하고 그다음에 원자력잠수함으로 가자’고 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서 (미국 내 부처 간)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그 부분만 빼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팩트시트 자체 발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주 내 발표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외에도 향후 이행 과정에 관한 세부 문안 조율이 시간이 걸리면서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다. 미국 측은 “한국이 완전 개방에 합의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실은 “일부 농축산물 품목의 검역 절차 간소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지연 요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가 꼽힌다.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이 대부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과 달리 한국은 여러 추가 조건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한국은) 다른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장치를 마련했을 것”이라며 “트럼프도 우리의 요구를 모두 공동성명에 담기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팩트시트를 만들어 놓으면 이후 해석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해석의 전쟁이 시작된다”고 전망했다. 김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든 ‘골대를 옮기는 식’의 요구를 해올 수 있다면서 우리 정부의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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