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위법 지시 불이행 명문화…모호한 기준에 조직 불신 확산 우려

정치

뉴스1,

2025년 11월 25일, 오후 05:32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의 의무'를 규정한 조항이 76년 만에 삭제된다. 앞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위법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게 된다. 12·3 비상계엄 당시 '복종 의무'에 따른 공직사회의 혼란이 있었던 만큼 법 개정을 통해 자정 능력을 갖추자는 취지다.

다만 위법한 지시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고 위법성이 사후에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 이번 개정안이 공직사회의 불신을 키우고, 공직기강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자칫 상급자와 하급자 간 갈등으로 비화해 공직사회 업무 속도가 크게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의 '복종 의무' 조문을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25일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복종 의무'→'상관 지휘 따를 의무'…위법성 판단 시 거부 가능
개정안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한다'는 제57조 복종의 의무를 삭제했다. 지난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당시 도입된 '복종의 의무'가 76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개정안은 대신 공무원의 의무를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변경했다.

또 공무원이 구체적인 직무 수행과 관련해 상관의 지휘·감독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세부 조문도 담았다. 이행을 거부하더라도 인사 등에서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하위 법령에 규정하겠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아울러 제56조 '성실 의무'를 '법령준수 및 성실의무'로 변경하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한다는 조문을 담았다.

이번 개정안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부터 준비됐다. 상급자로부터 위법한 지시가 내려와도 공직사회 스스로가 부당한 업무를 배제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인사혁신처는 내달 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 심의·의결을 거친 후 법안이 최종 공포되면 6개월 뒤 법이 시행된다.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위법한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확고한 판례가 지금도 있지만 제도화하지 않으면 상명하복 문화에 젖어 기존 관행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라며 "낡은 복종 의무론을 민주주의적 헌정 질서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위법성 즉시 판단 어려워…상급자·하급자 갈등만 유발할 수도
공무원법상 '복종 의무'는 이미 구문화해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상관의 위법한 지휘·감독에 대한 이행 거부를 명문화한 조문이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사안마다 관련 법령을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통 명백한 법 위반보다는 해석의 재량권을 두고 상급자의 지시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하급자가 그때 그때 위법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위법성 여부는 법원이나 행정 소청심사에서 밝혀지기 때문에 '위법 지시 불이행' 조문이 상급자·하급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위 공무원이 위법한 지시를 따르지 못하도록, 이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했는데 그 부분이 불명확하다. 명확한 판단은 사후에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법에 있는데 법과 다르게 직무 명령을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법의 의미는 법 해석의 문제가 있을 때 과도한 재량권의 일탈, 남용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과도하게 재량권을 일탈한 직무 명령이라는 판단은 상급자와 하급자가 다를 수 있다. 그런 것은 법원이나 소청심사에서 따질 문제다. 지금은 오히려 상급자, 하급자 간의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상명하복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리면 상급자가 하급자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근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하급자의 업무를 어떤식으로 통제할 건가. 지금 개정안은 (공직사회가) 각자 따로 놀라고 하는 꼴이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법성 여부가 즉시 판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비판에 인사혁신처는 "그럴 때는 정황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위법성 인지 못했을 경우 하급 공무원도 책임…"교육·훈련 제도화해야"
상관이 위법한 지시를 내리더라도 하급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행했을 경우에는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대법원 판례(2005도3717 등)는 공무원이 위법한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보고 있다. 또 위법성을 인식하기 위한 노력 여부 등에 따라 형법16조(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의 적용을 달리 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위법성을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이행 거부' 조문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급 공무원들이 '이행 거부'를 남용할 가능성도 있다.

박 차장은 "(개정안이) 현장에서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 설계와 함께 교육과 훈련이 제도화해야 한다"며 "헌법 가치 교육을 계속해서 실시할 것이고 직무상에서 위법한지 판단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근거법령이나 관련법령, 전체 헌법 질서의 위법성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교육도 더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anantway@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