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복귀한 1일 오전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등이 이동하고 있다. 2025.9.1/뉴스1 © News1 남승렬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의대 정원 연 2000명 증원안이 객관적 근거도 갖추지 않은 '정책 참사'로 드러났다. 애초 보건복지부는 연간 500명씩 6년간 3000명을 증원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의 압박에 수정을 거듭, 5년간 2000명씩 총 1만 명을 늘리는 안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근거로 쓰인 '부족 의사 수 추계'도 엉터리인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억지가 의정갈등과 이로 인한 의료 현장의 혼란을 초래한 셈이다.
감사원은 지난 2월 국회의 감사 요구에 따라 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를 실시, 복지부가 증원 규모 결정 근거로 활용한 '2035년 부족 의사 수 추계'의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하고, 의료현안협의체 협의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미흡했다고 결론 내렸다.
교육부가 대학 교육 여건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을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위원에 균형있게 포함하지 않고, 대학별 학생 수용역량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하거나 배정 기준을 일관성 없이 적용한 것도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계와 의학교육계에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2025.1.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초안부터 주먹구구식…"더 늘려야" 尹 한마디에 누더기 정책 나와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초안부터 주먹구구식이었다. 조규홍 전 복지부 장관은 지난 2023년 6월 2025~2030년 6년간 500명씩 총 3000명을 늘리는 안을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500명이란 숫자는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는 증원안이 추진됐던 만큼 단순히 이보다 많은 연간 500명 증원안을 보고했다는 게 조 전 장관의 진술이다.
이같은 초안은 "그 정도로는 불충분하고 1000명 이상을 늘려야 한다"는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수정을 거듭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복지부는 같은해 10월 2025~2027년까지 연간 1000명씩, 2028년 1942명 등 총 4942명을 증원하는 안을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필요한 만큼 충분히 더 늘려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압박에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조 전 장관에게 "2000명 일괄 증원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전 수석은 2035년 약 1만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추계를 기반으로 이를 단순 나누기해 2000명이란 숫자를 제시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 등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장기화 되고 있는 3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게시판에 전공의 모집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4일부터 수련병원별로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총 3천500여 명의 모집을 시작하고, 9일까지 원서를 접수한 후 필기와 면접을 거쳐 19일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른바 '빅5' 병원의 경우 서울대병원 105명, 세브란스병원 104명, 서울아산병원 110명, 삼성서울병원 96명, 서울성모병원 73명을 각각 모집한다. 2024.12.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복지부 두 가지 안에도 '2000명' 고집…소통 부재 속 정책 밀어붙여
복지부는 연간 2000명을 증원할 경우 의사 단체의 반발이 심할 것을 우려해 대통령실에 두 가지 안을 보고했다. 1안은 처음 2개년은 900명씩, 이후 2개년은 1600명씩, 마지막 1년은 2000명씩 총 7000명을 늘리는 안이었다. 2안은 이 전 수석이 제안한 5년간 2000명씩 총 1만 명 증원안이다.
복지부는 연간 네 자릿수 증원안을 낼 경우 큰 반발에 부딪힐 것을 우려해 1안을 끼워 넣었지만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단계적 증원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전했다.
이에 따라 조 전 장관은 1안을 첫 2개년간 900명씩 이후 3개년간 2000명씩 총 7800명을 늘리는 것으로 수정해 연간 2000명 증원안과 함께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또한 1안을 반대하면서 연간 2000명 증원안으로 결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의료계 반발이 우려된다는 조 전 장관 보고에 윤 전 대통령은 "반발을 줄일 방안을 더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월 비서실장 주재 전략회의에서 2025년에 1700명만 증원하고 지역 의대가 신설되는 시기에 맞춰 300명을 추가 증원하는 안을 제안했다.
당시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전 수석은 2안(연간 2000명 증원) 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채 논의를 마무리했다.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이 전 수석은 "나중에 여러 상황에서 (증원 규모가)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고 큰 숫자로 나가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비서실장 주재 전략회의 이후 더이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의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조차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은 대통령실의 의중에 따라 지난해 2월 열린 보정심 회의에 연간 2000명 증원안을 상정했다.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한 공식 심의기구에 연 2000명 증원안이 논의된 건 이날이 처음이었으나 충분한 논의 없이 의결됐다. 복지부는 보정심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언론에 브리핑 공지를 한 상태였다.
한편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 의대 정원 증원 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고, 복지부에 향후 의대 정원 조정 추진 과정에서 '부족 의사 수 추계 문제점 분석 결과'를 참고하고 실질적 의견 수렴을 통한 심의를 하도록 통보했다.
교육부에는 향후 대학별 정원 배정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hanantway@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