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장 재임기였던 1990년 고인은 남북 고위급 회담의 실무를 총괄하며 북방정책 추진에 집중했다. 당시 서울과 평양 간 첫 공식 회담이 이뤄졌고, 이는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과 유엔 동시 가입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됐다. 같은 해 그는 특사 자격으로 비밀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이 자리는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성격이었으나 실제 회담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당시 정부가 독자적 핵무기 개발을 검토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서동권 전 부장의 측근과 전직 장관들의 회고록 등을 통해, 1990년 전후 안기부가 플루토늄 확보 및 핵무장 시나리오를 비공식 논의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정치 특보를 끝으로 1992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엔 법률문화연구소를 이끌며 변호사 활동을 이어갔다. 모교 경북고 야구부 후원회장을 맡아 지역 야구 발전에 힘쓴 점도 유족들이 강조한 그의 삶의 한 부분이다. 저서로 ‘한국검찰사’가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세 씨와 2남4녀가 있으며 사위와 며느리들이 고인을 함께 기린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며 29일 오전 11시부터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12월 1일 오전 9시20분. 장지는 경기도 광주 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