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낙제점 준 여야 지지층…대선 투표율도 ‘양극화’ 반영
계엄 후 정치적 양극화는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지난 6월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선 사후 국민 인식 조사’(웹 조사)에 따르면, 100점 만점 기준인 호감도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국민의힘에 14점, 국민의힘 지지층은 민주당에 18점으로 사실상 낙제점을 부여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재명 대통령 호감도에 대해서도 15점을 부여해 민주당과 유사한 수준의 적대감을 표현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층의 인식이 가장 뚜렷하게 갈린 것은 부정선거 주장에 대한 공감이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10명 중 7명(71%)이 부정선거 주장에 공감한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16%만 공감한다고 답했다. 동일한 정치·사회 현상을 놓고 지지 진영에 따라 사실 인식 자체가 전혀 다르게 형성되면서 정상적인 정책 논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21대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불법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배출했음에도 김문수 후보(41.15%) 득표율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49.42%) 대비 8.27%포인트(p) 차이 밖에 나지 않은 이유를 ‘정치 극단화’에서 찾기도 한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열린 19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41.08%)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4.03%)의 격차는 17%p 이상이었다.
이에 대해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2025 궐위 대선 누가 왜 보수를 지지했는가’라는 논문에서 “대선의 결과를 토대로 확인된 한국 정치의 심화된 정파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 국면에도 유권자의 정치적 인식과 투표행태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며 “정파적 양극화는 정치적인 태도와 인식은 물론 행태에서 유권자들을 분열시켰다. 민주주의의 체제적인 위기에도 그러한 분열은 약화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비상계엄이라는 불법행위 자체보다 정파적 양극화가 보수 진영의 표심 형성에 더 우선하는 요인이었다는 얘기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탄핵 찬반이 보수 분열로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탄핵 찬반이 보수 진영 분열로 이어지지 않아 그대로 보수 진영의 대오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특검 수사 규탄대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여야 모두 이른바 강성 지지층 잡기에 몰두하는 상황은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부추겼다. 강성 지지층은 선거 및 당원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집회, 후원금, 온라인 여론전 등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 중도층 포섭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정청래 민주당 당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 모두 다소 부족한 정치적 기반을 강성 지지층으로 채우며 당선됐다. 이를 위해 정청래 대표는 극좌 성향 방송인 김어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반대로 장동혁 대표는 극우 유튜버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장 대표는 당대표 당선 후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승리”라며 당선의 공을 극우 유튜버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실제 여야 합의가 강성 지지층 여론으로 인해 깨지는 사례도 있다. 지난 9월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대 특검의 수사 기간을 추가 연장하지 않고, 수사 인력도 필요한 인원에 한해서만 증원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국민의힘은 자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정무위에 정부가 요청하는 금융감독위 설치법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특검 합의 관련해 당 게시판 등에 격렬하게 항의하며 김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 대표는 “제가 수용할 수 없었고 지도부 뜻과 다르기 때문에 바로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했으나, 사실상 ‘개혁의 딸(개딸)’ 등 강성 지지자 여론에 물러섰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아울러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겨냥한 ‘위헌정당·내란프레임’ 역시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국민의힘을 겨냥 “위헌정당 해산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내란당의 오명을 끌어안고 살겠나”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2대 국회의 극단적인 여대야소 구도가 오히려 정치 극단화를 가속했다는 분석도 있다.
나경원 의원실이 국회사무처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2대 국회 상임위 및 소위원회에서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일방표결로 의결된 건수가 180건(9월 기준)에 이른다. 21대와 20대 국회에서는 각각 64건, 7건에 불과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2대 국회에서 여야 의석수가 비슷했다면 의회 내에서 싸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대립양상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민의힘이 의석이 여당과 비교해 크게 부족하기에, 소수가 된 국민의힘이 반발과 저항이 더 격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22대 국회는 개원 이후 무려 7번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진행됐다. 22대 동일하게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21대 국회 필리버스터가 2회에 불과했던 점을 돌아보면 22대 국회가 얼마나 ‘극단 대치’를 벌이고 있는지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정치 양극화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엄경영 소장은 “정부·여당은 내란척결, 기득권 교체 등 이른바 ‘포스트탄핵’, ‘적폐청산 시즌2’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요정치인들이 국민통합을 외치면 달라질 수 있겠으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신율 교수 역시 “정치적 양극화는 쉽게 해결할 수 없다. 다만 23대 국회에서 여야 의석수가 비슷해진다면 조금 나아질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