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⑤첫 탄핵 시도 불발, 시작된 분열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2월 04일, 오후 10:24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다.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초유의 사태였다. 계엄과 탄핵, 조기 대선을 거치며 사회는 깊게 갈라졌다.

이 시리즈는 그 시기 국회를 출입하며 모든 순간을 지켜본 기자의 기록이다. 국정 혼란과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 비상계엄 과정과 그 이후를 목격자의 시선으로 덤덤히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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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7일 토요일 역사적인 탄핵 표결의 날. 국회 밖은 결의에 찬 표정의 시민들이 모였다.

차가운 바람이 이들을 휘감았지만 이들의 결기를 녹일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며 모인 사람들이다.

경찰들은 굳은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국회 정문을 지켰다. 국회 보좌진들과 기자들은 삼엄해진 경계 속에 자신의 출입증을 꺼내 보이고 국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오전 9시 정도.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나.’ 혹여 ‘하야 선언을 하지 않을까’라는 희망 섞인 예상이 나왔다.

사태 장기화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대통령 중심 민주주의 원조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그런 선례가 있지 않았던가.

그 예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다. 닉슨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 9일 사임했다. 1972년 발생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 몸통임이 드러났고 의회의 탄핵이 임박하자 불명예 퇴진을 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대통령 축출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미국 민주주의가 망가지고 국민들이 분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결단이기도 했다.

이런 기대와 달리 윤 대통령은 ‘하야’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속내는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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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고 제2계엄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은 했다만 물러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본인의 임기와 관련해서는 ‘당’ 그러니까 국민의힘에 일임한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당과는 그 어떤 타협과 대화도 없을 것이라고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대 최악의 관계라고 비유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이었는데 양자는 탄핵 표결 당일까지도 평행선을 달렸다.

그즈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태도가 다소 불분명해졌다. 그는 3일 밤, 4일 새벽까지만 해도 ‘반헌법적, 불법계엄’이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을 떠나 ‘의회를 계엄으로부터 보호하겠다’라는 자세가 분명했다. 그런데 야당 주도의 탄핵이 현실이 되자 어정쩡한 태도로 바뀌었다. 그는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 수행은 불가능한 상황이고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탄핵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탄핵 찬성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한 대표 본인 의중으로는 윤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게 하면서 조기대선을 준비하려고 했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야당에 의해 대통령이 또 탄핵 당하는 상황을 재현하고 싶지 않다는 당내 중진들의 의지를 감안한 듯 싶었다.



국민의힘 중진들에게 있어 2016년 탄핵은 잊고 싶은 트라우마 같았다. 탄핵 후 새누리당은 궤멸적 분당을 겪어야 했고 연이어 열린 대선(2017년), 지방선거(2018년), 총선(2020년)에서 대패를 했다. 그때를 지나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악몽과 같았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당론을 결정했고 7일에도 유지했다. 안철수 의원은 탄핵에 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소수였다.

당론을 거스른다는 것은 이후 공천까지 포기하겠다는 것인데, 보통의 의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담화 이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재명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격앙된 목소리를 내며 윤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재명 대표는 “조기 퇴진 외에는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론을 등에 업었겠다, 다수당이겠다 탄핵에 자신 있다는 메시지였다.

야당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서두르는 것 같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접수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직 그 계엄의 전모가 다 밝혀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 외 누가 계엄의 주역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전체를 적으로 내몰기는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보다 큰 것은 ‘여당 이탈표를 충분하게 확보했느냐’였다. 무조건 다수의 힘만 믿고 탄핵 표결을 진행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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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비교하면 극명해진다. 그때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전력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을 일대일로 만났다.

각 의원들 한 명씩 설득하면서 탄핵을 함께 하자고 재촉했다. 탄핵 정족수를 넘기 위해서는 여당의 협조가 필수이긴 했지만 ‘국회가 함께 대통령을 몰아내자’라는 목적 의식이 더 컸다.

반면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족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탄핵을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요행을 바라듯 국민의힘 이탈표가 나오길 바라야 했다.

국민의힘도 이를 감지했다. 제로섬 게임 같은 상황에서 탈출구가 없다고 봤다. 일방적으로 당한다라는 인상만큼은 주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묘안이 ‘투표 참여 거부’였다. 원천봉쇄작전인 셈이다. 비밀투표 원칙을 어긴 것으로 탄핵을 찬성한다고 해도 주변 눈치 때문에 투표를 할 수가 없다.

보수당에서 누군가를 퇴출시킬 때 썼던 ‘배신자론’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이런 걱정과 별개로 오후 5시 본회의가 시작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은 5시 25분께 시작했다.

표결 시작과 함께 본회의장 내 여당 의원들은 다 본회의장을 나갔다. ‘남아 있는 사람은 배신자’라는 식이었다.

그나마 국민의힘 내 비례 김예지 의원, 대권주자급인 안철수 의원, 소장파인 김상욱 의원이 다시 들어와 표결에 참석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7차 본회의에서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에 투표한 후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 내 의총장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찾아가서 읍소를 하고 설득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노력을 진작 했으면 어땠을까.

결국 이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실패로 돌아갔다. 표결 성립 요건인 200석(투표 참여)이 되지 못하면서 ‘불성립’ 됐다. 사실상 부결.

투표함은 열어보지 못한 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무산됐다.

야당 의원들은 분노했다. 본회의장 분위기는 울분에 찬 이들의 고함 소리가 나왔다. 여당을 향해 ‘내란동조세력’이라는 험한 말이 나왔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단 위에 올라왔고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그 순간만큼은 정의(야당)와 비정의(여당)으로 뚜렷이 나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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