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그 시기 국회를 출입하며 모든 순간을 지켜본 기자의 기록이다. 국정 혼란과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 비상계엄 과정과 그 이후를 목격자의 시선으로 덤덤히 서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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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평상시 모습을 되찾았다. 그래도 뒤숭숭한 분위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후 정국은 어떻게 전개될지, 윤석열 대통령은 또 어떻게 될지, 과연 탄핵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거의 모든 게 불확실했다.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환율은 춤추듯 치솟았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원·달러 환율 선이 1500원 선마저 넘어가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윤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됐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여당인 국민의힘 당직자들조차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2차 계엄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야당에서 계속 나왔다. 계엄 선포설을 맞췄던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힘줘 말하니 더 불안해졌다.
그러는 사이 탄핵의 속도는 빨라졌다. 계엄 실패 후 바로 다음 날인 5일 0시 48분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표결에 부쳐 달라고 올린 것이다.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해야 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7일(토요일) 탄핵안 표결이 유력해졌다.
이렇게나 빨리, 그리고 급속하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진행이 됐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활기가 돌았다.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느꼈다고나 할까. 탄핵 통과를 거의 확실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계엄의 전모도 밝혀지고 있었다. 당사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가올 후과를 감지한 듯했다.
이젠 그들도 살기 위해, 반란군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앞가림을 해야 했다. 윤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했다.
그런 판은 민주당이 깔아줬다. 육군 대장 출신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을 찾아 그들의 진술을 들었다.
김 의원은 국정원 차장 출신 박선원 의원과 함께 스마트폰을 들고 그들의 부대를 찾아다녔다. 비상계엄 선포 명령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이후 어떤 지시를 수행했는지 질문했다. 이들은 비교적 소상히 답변했다.
곽종근 사령관은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인원을 밖으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현장에서 판단했을 때 국회의원을 끌어내는 것은 위법사항이었다, 나중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항명인 줄 알았지만 그 임무를 (부하에게) 시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계엄군이 국회에 도착하고도 1시간 넘게 국회 본청 본회의장에 난입하지 않은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됐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튜브 채널 캡처
이들의 증언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영상 기록으로 남았다. 이날 김 의원이 남긴 유튜브 영상 기록은 이후 있을 헌법재판과 형사재판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다.
사실상 최초 진술이다 보니 말을 맞출 새가 없었을 것이다. 신빙성에 있어 효력이 높다는 의미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법정 거짓말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직접 본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는 점을 전했다. 이 사령관 또한 장병들에게 빈 몸으로 임무를 수행하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그는 부하 장병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이들이 만약 내란죄 혐의를 받고 실형을 받게 된다면 불명예제대는 물론 장성 출신으로 받을 수 있던 예우도 박탈된다.
같은 날 열린 국회정보위원회에서는 홍장원 국가정보원 차장이 주목받았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의 충복과 같았던 그는 내부 고발에 가까울 만큼의 증언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컸을 것이다.
홍 차장의 말을 빌리자면 3일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은 홍 차장에게 전화를 해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하자”라는 말까지 했다. 홍 차장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이 체포 대상이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후 국회에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에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모여 “윤석열을 탄핵하라”를 외쳤다. [사진=이데일리 박민 기자]
그렇게 탄핵 표결 전날(6일)이 저물어가던 때에 소문 하나가 국회에 돌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로 향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있을 여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기로 온다는 이유였다.
계엄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다음날(7일) 있을 표결에 불참해 주길 호소할 목적으로 보였다.
이 소식에 움직인 이들은 야당 의원들과 당직자였다. 이들은 국회 로텐더홀을 가득 채웠다. 취재진까지 몰려들면서 그곳은 아수라장이 됐다.
피켓을 들고 나와 윤 대통령의 입장을 막겠다고 큰 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다. 일부 의원은 “윤석열이 가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니라 감옥이다”라고 했다. “내란 수괴”라는 말도 나왔다.
만약 대통령이 국회 입장을 강행하고 경호처 직원들과 충돌이 일어난다면 또다른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경호처 직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의 길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야당 관계자들은 온몸으로 이를 막으려고 할 것으로 보였다. 사흘 전 국군 최정예 부대원들도 몸으로 막았던 이들이 아니었던가.
대치 상황이 예상되자 윤 대통령은 오던 길을 되돌려 돌아갔다. 국회 방문은 ‘없던 일’이 됐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의 국회 방문 일정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역사적인 7일이 밝았다.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는 날이었다. 국회 출입기자들은 소통관으로 향했다.
긴박하면서도 바쁜 토요일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탄핵 표결 상황을 기다릴 것으로 모두들 예상했다.
민주당이 과반을 넘는 다수당이라고 하지만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으면 탄핵소추안은 국회를 넘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일반 국무위원 탄핵과 달리 재적의원(300명중) 3분의 2 이상(200명)이 찬성할 때 국회 가결이 가능하다.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범야권 전부를 합해도 192명 정도다.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이 이탈해줘야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까지 갈 수 있다.
마음 한 켠에서는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민주당이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맞을까. 정권을 되찾아올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것 같았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및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탄핵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계엄과 무관한 여당 의원들까지 뭉뚱그려 반란세력이라고 불렀다. 좀더 시간을 갖고 이들을 설득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국민의힘 분열을 이끌어낼 만한 충분한 전략을 가져갔을 또 어땠을까?
상대는 2016~2017년 박근혜전 대통령 탄핵 때 혼란을 겪어본 유경험자들이었다. 탄핵 이후 당이 어떻게 분열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당의 분열을 막으려고 애썼다.
비상계엄이 한국 민주주의를 해치는 잘못된 것들이라고 (그래도 적지 않은 이들이) 인정하면서도 (야당에)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