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과 도하의 꿈이 만날 때[공관에서 온 편지]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2월 05일, 오전 05:00

[윤현수 주카타르대사] 우리의 가장 오랜 서정시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꼽는다. 강을 건너지 못한 임을 잃은 슬픔의 이별가다.

윤현수 주카타르대사(사진=외교부)
카타르에 부임해 1년 반이 돼 가는 필자가 새삼스레 옛 시구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도하’가 수도인 카타르는 새로운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 가는,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발전된 미래에 대한 찬가를 부르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카타르 국부의 원천은 천연가스를 위시한 에너지 자원이다. 추계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총생산(GDP)의 40%에서 60%까지로 보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3위인데 2030년까지 생산능력을 2배로 증가시킨다는 계획이다. 공공 및 민간 지출을 뺀 재원을 적극 투자하고 있으니 국부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일례로 카타르 국부펀드는 세계 9위 규모로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큰손 중 하나다.

여기서 그친다면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특히, 경제와 안보가 구별이 없는 시대에 경제자립과 강건한 공급망, 경제 다각화 없이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논할 수 없는데 카타르의 미래 지향과 현실의 전략이 바로 그러한 방향이고 가히 모범적이다.

카타르는 2021년 알울라 선언을 통해 인근 국가의 외교·경제 봉쇄를 극복하고 신선 유제품과 닭고기는 98%, 생선은 65%, 토마토·오이 등 중요 야채는 39%의 자립도를 달성했다. 국토가 거의 사막 아닌가 반문하겠지만 스마트 농법으로 이를 가능하게 했다. 석유화학의 핵심인 에틸렌, 암모니아와 요소, 헬륨 생산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카타르 현지 방산, 의약품, 그리고 전력설비 생산공장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서 카타르에 대한 선입관을 버렸다. 석유와 천연가스만을 수출하는 일차원적 경제는 카타르에 이미 ‘고조선’ 시대 이야기다.

카타르는 올해 들어 두 차례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가자지역 휴전협상의 중재자인 카타르를 협상 당사자의 하나인 이스라엘이 공격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카타르의 외교력은 상당한 진가를 발휘했다. 강대국과 주변국, 유엔과 국제재판소 등을 아우르며 대화와 교섭으로 국익을 확보하고 ‘평화를 만들어 내는 자’의 지위를 이내 회복했다. 평상시 다른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러한 카타르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이자 주요 교역 상대인 우리나라와 협력을 더욱 확대하고 싶어한다. 이미 수주한 100여 척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더해 더 많은 운반선을 만들어 주고 태양광 발전설비와 담수 복합 화력발전소 증설에도 우리 기업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방산 분야도 협력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되고 있다.

필자는 사막의 장미를 국립박물관으로 구현한 카타르와 도전정신, 열정과 두뇌로 첨단 산업국가를 이룩한 우리나라가 손을 맞잡고 서로 끌어준다면 조만간 제2의 ‘한강의 기적’과 ‘도하의 기적’을 마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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