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⑦탄핵, 국회를 통과하다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2월 06일, 오전 07:44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다.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초유의 사태였다. 계엄과 탄핵, 조기 대선을 거치며 사회는 깊게 갈라졌다.

이 시리즈는 그 시기 국회를 출입하며 모든 순간을 지켜본 기자의 기록이다. 국정 혼란과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 비상계엄 과정과 그 이후를 목격자의 시선으로 덤덤히 서술한다




2024년 12월 14일의 날이 밝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진 듯 보였다.

여론을 관망하려고 했던 국민의힘도 반 정도 포기한 것 같았다. ‘탄핵에 반대한다’라는 어느정도 체면치레만 된다면 용인할 것으로 보였다.

더불어민주당도 전략을 바꿨다. 신속한 탄핵 심판을 위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를 줄이고 압축했다.

헌법의 기준으로 봤을 때 대통령의 위헌성을 가리는 데 집중했다.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이나 대중(對中) 외교 실패 등의 사유는 뺐다.

사실 이런 탄핵 사유는 윤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형사 재판에서 다룰 일이지, 헌법재판관들이 판단하고 심리할 부분은 아닌 듯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의원들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투표할지 안 할지 그들의 의사에 맡긴 것이다.

더는 ‘투표장 입장 배신자’를 가려내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성난 국민들의 민심도 무서웠겠지만 국회의사당 내 의원들의 투표권을 막는 것도 위헌적인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 무대


탄핵 가결의 기운이 무르익었을까,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 공원과 국회의사당 근처는 오전부터 축제 분위기가 물씬 연출됐다.

국회 앞에는 대형 스피커가 달린 무대가 설치됐고 최신 K팝 음악이 나왔다. 여의도공원에도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북적한 국회 바깥 거리와 달리 국회 안은 차분했다. 국회 보좌진들 몇몇이 눈에 띄었을 뿐 한주전과 분위기가 달랐다. 여도 야도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채 차분히 본회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조된 것은 본회의장 주변 취재 분위기. 헌정 사상 두 번째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앞두고 기자들은 줄을 서 본회의장 입장을 기다렸다.

본회의장 방청석 입장 시간은 오후 3시30분이었는데 오후 2시부터 대기줄이 생겨났다.

사진·방송기자들이 방청석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사다리 등의 장비를 가져다 놓았고 ‘펜기자’들도 자신들의 가방을 놓았다.

사람들이 와 줄을 서기 시작한 시간은 오후 2시 50분부터였다. 누군가는 작은 소리로 푸념하기도 했다. “롯데월드네.”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 중인 취재진들


오후 3시 30분이 되자 기자들의 방청석 입장이 시작됐다. 본회의장을 정면으로 사진기자와 방송기자들이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을 든 펜기자들은 의자에 앉아서 본회의 개의를 기다렸다.

오후 3시 45분이 되자 본회의장 전광판에 ‘제419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라는 문구가 나왔다.

‘2024년 12월 14(토) 16:00’라는 문구가 바로 아래에 켜졌다. 속기사들이 들어오고 국회 본회의장 내 직원들이 속속 자리에 앉았다. 본회의장과 방청석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오후 3시 57분이 되자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가장 먼저 본회의장에 들어와 착석했다. 그 뒤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오후 3시 59분께 민주당 지도부 의원들이 입장했다. 방청석에 있던 카메라 기자들이 셔터를 터뜨렸다.

정확히 오후 4시에 본회의장에 들어온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후 4시 1분에 국회의장석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우 의장은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주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와 앉아야 할 자리였다.

오후 4시 4분이 되자 여당 의원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분 뒤인 오후 4시 6분 우 의장은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다.

김상욱 의원 바라보는 국민의힘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이날 안건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단 한 건이었다. 제안 설명자도 대표 발의자인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한 명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제안설명에서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1980년 선포된 비상계엄과 쌍둥이와 같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민들이 나서서 막지 않았다면 ‘1980년 광주’가 재현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안 설명 말미에 그는 “윤석열이 우리나라 최대 리스크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여당에서는 어느 누구도 큰 소리로 반박하지 않았다.

본회의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고성도 없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체념한 듯 했다. 오판과 오산에 따른 평시 계엄이 가져온 파장과 위력이었다.

박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은 오후 4시 27분에 끝났다. 투표는 오후 4시 29분에 시작했다.

투표 시작과 함께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르르 나가는 모습이 보이자 방청석은 술렁였다. ‘혹시 단체로 퇴장하는 게 아닐까?’

‘이번에도 단체로 퇴장하면 어쩌나’ 우려와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은 투표소로 향했다. 그들은 그들의 표를 행사했다.

가장 먼저 권성동 원내대표가 투표를 하고 나왔다. 이후 권영세 의원 등 중진들도 투표를 마쳤다.

이날 여당 의원들 중에는 김상욱 의원이 눈에 띄었다. 본회의장 맨 앞줄에 앉은 그는 황토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의 황토색 점퍼는 검은색 슈트를 입은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 눈에 더 잘 띄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황토색 점퍼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 하단에 꽂힌 듯 보였다.

그의 옆을 지나는 동료 의원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의원들도 맨 앞줄에 앉은 그를 외면했다. 그도 구태여 다른 의원들과 악수를 하거나 붙잡지 않았다.

흡사 여와 야 사이에 있는 황토색 섬 같았다.

홀로 앉아 있는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황토색 점퍼)


투표는 오후 4시 45분에 완료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투표를 다했나?”라고 물었다.

명패함이 열리고 감표요원들이 명패 수를 셌다. 5분 만에 명패 수 300매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전원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투표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개표는 오후 4시 50분부터 시작했다. 9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오후 4시 59분 우원식 의장에게 종이 하나가 건네졌다.

투표 결과를 담은 종이였다.

그 종이를 본 우 의장은 몇 초간 말을 하지 않고 정적을 지켰다.

정확히 오후 5시가 되자 우 의장은 “총 투표수 300표 중 찬성 204표로 가결되었다”고 선포했다.

우 의장은 “국민 여러분께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 용기와 헌신이 이 결정을 이끌었다”면서 “이제 헌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의 연말이 좀 더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고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개표 중인 모습


표결 결과가 발표된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나갔다.

그러나 김상욱 의원만은 황토색 점퍼에 얼굴을 묻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산회가 선포된 뒤에야 그는 회의장 바깥을 나갔다. 300명 의원 중 가장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표결은 그렇게 1시간여 만에 끝났다. 지난 2022년 대선 ‘국민이 키운 대통령’을 내세우며 당선됐던 윤석열의 시대도 2년 반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아 있었지만 ‘탄핵 인용’은 거의 확실하게 느껴졌다.

국회 본회의장 바깥을 나오자 아련하게 음악 소리가 나왔다. 빅뱅 지드래곤의 화려한 음악이었다. 바깥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국회 정문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로제, 부르노 마스의 ‘아파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정문에 줄을 서서 탄핵소추안 통과에 기여한 사람들을 환영하는 듯 보였다.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와~ 만세’라고 부르면 모두가 다 호응해 줄 것처럼 보였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가 저물고 날이 다시 추워졌다. 사람들은 각자 돌아서 갔다.

돌아가는 이들 상당수가 젊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응원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이 정치 변혁의 주역이 됐구나.’ 한국이 늙어간다고 했지만 이날 이 자리만큼은 밝고 건강해 보였다.

경제도 안정을 찾는 분위기였다. 한국에 관심 많은 해외 투자자들은 확실히 우리 정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치솟을 것 같았던 환율은 안정을 찾았고 국채 금리도 더는 오르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 경제를 흔들고 국가의 위협으로 작용했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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