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대표가 비상계엄 사과를 못하는 이유[국회기자24시]

정치

이데일리,

2025년 12월 06일, 오전 10:00

[이데일리 김한영 기자] “장동혁 대표도 외연 확장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어렵죠”

계엄 1년을 맞은 지난 3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사실상 사과를 거부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는 의원 전원 명의로 사과에 나섰습니다. 그 외 소장파 등 당내 의원 40여 명은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했습니다. 장 대표가 계엄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내 핵심관계자들은 이같이 말합니다. 안 한게 아니라 못한 거라는 거죠.

왼쪽부터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사진 = 이데일리DB)
◇張 “계엄은 의회 폭거 맞서기 위함”…당내 “대표 자격 없다” 비판

장 대표는 지난 3일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습니다”라며 “이제 어둠의 1년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영장 기각을 신호탄으로 내란 몰이가 막을 내렸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계엄에 이은 탄핵으로 빚은 혼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동시에 계엄을 ‘의회 폭거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규정하며 옹호에 가까운 메시지를 냈습니다. 이는 계엄 사과에 동참한 송 원내대표와 소장파 의원 등 40여명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 지도부에서는 “사전에 정교하게 조율된 메시지”라며 당 분열 우려를 진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내홍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김재섭 의원은 “장 대표가 반성은커녕 계몽령을 선언했다”며 “당을 폐허로 만든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하면 대표의 자격도, 국민의힘의 미래도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정부 6개월 국정평가 회의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장이 장 대표를 향해 “계엄이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이어 “그럼에도 비상 계엄에 대해 잘못했다는 인식을 아직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판하는 꼴이니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다. 몇 개월 배신자 소리를 듣더라도 계엄의 굴레를 벗어나자”고 공개적으로 질타했습니다.

◇선명성 내세운 1.5선 당대표…지지층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엘리트 판사 출신이자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전 대선후보라는 강력한 우승 후보를 꺾고 당선된 장 대표가 이러한 정치적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장 대표가 사과를 하지 못한 배경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와 전략적 제약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 누구보다 강경함을 앞세워 지지층을 결집시켰습니다. 전한길 전 강사 인터뷰에 나서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면회도 약속하는 등 선명성을 강조했습니다. ‘1.5선’의 짧은 정치 경력에 비영남권 인사였던 그에게 보수 지지층의 확실한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던 만큼, 갑작스러운 중도 확장으로 방향을 틀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국민의힘 당원 등 보수 지지층에서는 ‘중도’에 대한 거부감이 뚜렷합니다. 이재명 정권 규탄 전국순회 국민대회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언급한 발언자가 연단에 오를 때마다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일부는 “나가라”, “꺼져라” 등 비속어를 외치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선명성을 내세웠던 송 원내대표와 신동욱 수석최고위원도 계엄 사과를 언급한 이후 당원들에게서 ‘폭탄 문자’를 받고 있다는 전언이 이어집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가 28일 오후 인천 중구 용유로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에서 열린 2025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생각에 잠겨있다.
◇민심은 ‘사과’, 당심은 ‘옹호’…張 앞에 놓인 전략적 부담

지지층의 강성화도 또 다른 요인입니다. 리서치뷰가 지난달 28~30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2%가 비상계엄을 ‘부적절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민의힘이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도 63.6%에 달했습니다. 반면 보수층에서는 ‘계엄은 적절했다’는 답변이 60.6%, ‘공식 사과는 불필요하다’는 응답이 63.3%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반 여론과 보수 당심 사이 간극이 극단적으로 벌어진 셈입니다. 해당 조사는 RDD 휴대전화 100% 방식의 ARS 자동응답으로 실시했습니다. 응답률은 3.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실제로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을 보면 “사과한 송언석은 사퇴하라”, “계엄 사과한 40명 모두 나가라”, “장동혁은 잘하고 있다” 등과 같은 분노를 표출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과를 사실상 거부한 장 대표와 사과에 나선 송 원내대표 등 40여 명의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내 평가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계엄은 정당했다’고 보는 강경 지지층은 ‘계엄은 부적절했다’고 보는 일반 여론에 다가가려는 당내 움직임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장 대표 취임 후 첫 연찬회에서 한 정치전문가는 장 대표에게 “지지층을 배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직언했습니다. 선거 국면으로 갈수록 일반 여론은 장 대표에게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라는 요구를 더 크게 던질 것입니다. 장 대표에게 지금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대여 공세보다도 미움받을 용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