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의원들의 빈자리가 눈에 띄고 있다.(사진=뉴시스)
필리버스터가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압박에 맞서 소수 야당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입장을 국민에게 알리는 최후의 카드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야당이 필리버스터는 마지막 호소보다는 여당에 대한 마지막 골탕에 가까워 보인다. 비쟁점 법안에까지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놓고 그것을 경청하는 국민의힘 의원은 손에 꼽는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부의장도 자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동안 사회를 거부하며 여당을 애먹이고 있다.
약자의 입이 힘을 얻으려면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호소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필리버스터를 무작정 걸고 보는 행태는 필리버스터의 진정성과 무게만 훼손할 뿐이다. 국민의힘이 정말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제도 개편이나 내란 전담 재판부가 악법이라고 판단한다며 필리버스터 남발로 몇 주 미루는 데 만족할 게 아니라 해당 법안에만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해당 법안의 독소 조항을 정밀 타격해야 한다.
약자의 입을 말했으니 강자의 귀도 언급해야겠다. 요새 민주당은 귀를 여는 데 인색하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자마자 종결동의안을 제출한다. 필리버스터가 끝날 무렵엔 마지막 발언자를 향해 발언을 끝내라며 고성과 비아냥을 보내는 일도 적지 않다. 현재 여권은 마음먹으면 개헌을 제외한 모든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진정성 있는 필리버스터에 나선다면 며칠 말미를 주는 건 무리가 아니다.
“5분의 3(필리버스터 종결 요건)이니 안건조정위원회니 하는 제도는 대화와 타협을 촉진시키기 위한 제도지, 국회의 의사를 방해하고 저지하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타협에 의한 운영이 될 때 국회를 보는 국민의 눈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우리가 통과시키는 법은 국민 전체가, 대다수가 승복하는 그런 법이 될 것입니다.” 작고한 박상천 전 의원은 2012년 필리버스터가 재도입될 때 이렇게 말했다. 필리버스터에 입법 통로가 막힌 지금, 강자와 약자가 모두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