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에서 ‘기본소득’ ‘기본사회’ 표현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성장’이 대체했다. 사진=연합뉴스
대선 당시만 해도 ‘공정’과 ‘분배’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과 달리, 신년사에서는 “성공의 공식이 이제는 발목을 잡는 성공의 함정이 됐다”고 진단하며 경제 성장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분배를 앞세우기보다 성장 구조를 재설계해 성과를 국민 모두와 나누겠다는 방향 전환이다.
이 대통령은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이 더 이상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 편중이 오히려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판단이다.
◇ 기본소득 대신 ‘성장 참여’…국민성장펀드 전면에
대선 공약의 상징이었던 기본소득·기본사회 등 이른바 ‘기본 시리즈’는 올해 신년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를 대신해 이 대통령은 “국민 누구나 나라의 성장 발전에 투자하고, 성장의 열매를 고루 나누는 전환의 마중물”로서 ‘국민성장펀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재정 지출형 직접 분배(기본소득) 모델에서, 성장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 수익을 공유하는 ‘성장 참여형 분배’로의 노선 변화다.
정부 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기본 시리즈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확보해 기본권의 토대를 다지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대도약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특정 소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
노동 담론의 무게중심도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추겠다”며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향후 국정 운영에서 ‘혁신과 도전을 통한 창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자산이 되는 나라”,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겠다”는 언급은 이러한 방향성을 뒷받침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AI시대부터 에너지 대전환까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 ‘창조적 파괴’를 이끌 혁신가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청년들을 독려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창업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노동권 보호를 뒷전으로 미루는 부작용은 경계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률 OECD 1위’라는 불명예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자랑스러울 수 없다”며 “아침에 출근한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에서 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유연한 창업 생태계가 노동 안전망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메시지다.
“안전한 일터에서 이뤄낸 성장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표현 역시 노동권 보호를 경제 성장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대목이다.
◇ 수도권 1극 깨고 ‘지방 주도 성장’ 전면에
지역 경제 전략 역시 이번 신년사의 핵심 축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1극 체제에서 5극 3특 체제로의 대전환은 지방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 재도약의 필수 전략”이라고 규정했다. 수도권에서 멀수록 더 두텁고 과감하게 지원하겠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 반도체 벨트, AI 실증도시, 재생에너지 집적단지 등 산업과 지역을 연결한 구상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대선 당시 ‘균형발전’이 가치 선언에 가까웠다면, 이번 신년사에서는 성장 전략으로 격상됐다.
이 같은 메시지는 오는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민심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정치적 고려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주도의 첨단산업 육성 의지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어렵게 확보한 GPU 26만 장”, “150조 원에 달하는 국민성장펀드”, “여야가 합의한 AI 시대의 첫 예산안”을 언급하며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뒷받침할 중요한 발판”이라고 강조했다.
◇ 성장의 또다른 축 ‘문화’…제조업 중심 성장 한계 보완
이재명 대통령은 성장 전략의 또 다른 축으로 ‘문화’를 내세웠다. 그는 “상품만 앞세우는 성장에서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다”며 “K-콘텐츠 수출이 이차전지와 전기차를 넘어서는 시대에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필수 성장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문화가 곧 경제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이라는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K-팝 팬덤이 K-뷰티 매니아로 성장하고, K-드라마 시청률이 K-푸드 판매율을 끌어올린다”며 문화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문화를 매개로 한 연쇄 성장 모델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K-컬처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기초예술을 포함한 문화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정부는 문화 예산을 9조6000억원까지 대폭 증액해 콘텐츠 제작부터 인재 양성, 글로벌 확산까지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제조업 중심 성장의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성장축으로 문화 산업을 공식화한 것이다.
◇ 안보가 곧 경제… ‘실용 외교’로 수출 지평 확대
외교·안보 성과를 경제적 실익으로 연결하겠다는 ‘실용주의’적 태도도 신년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을 통한 불확실성 해소와 함께 핵 추진 잠수함 건조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를 언급하며 이를 “경제 부흥의 든든한 뒷받침”이라고 평가했다.
한미 동맹을 통해 확보한 기술·안보 자산을 방산, 원전, 반도체 등 핵심 전략 산업의 수출 경쟁력으로 치환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이같은 구상들이 실제 정책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국민성장펀드의 수익 구조와 지속 가능성, △지방 주도 성장 전략의 실행력 확보와 재원 마련 방안, △창업 중심 정책과 고용 안정간의 균형점 찾기 △안전 강화 기조가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향후 이재명 정부 경제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