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도하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문제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위 실장은 CPTPP에 대해 “서로 좀 더 실질적인 부서 간 협의를 요하는 문제”라며 모호하지만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후쿠시마 등 일본 일부 지역 수산물 수입 재개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측 입장을 청취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강조해 온 공급망 협력은 원칙적 공감대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틀을 잡아가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일본 나라현 정상회담장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성락 실장은 14일 일본 오사카 순방기자단 프레스센터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상 간 유대를 강화하자는 일본 측 요청으로 20여 분간 별도 환담을 추가로 가졌고, 만찬까지 이어가며 진솔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강조했다.
위 실장이 밝힌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은 ‘한일 실질 협력의 확장’이었다. 위 실장은 “이번에는 협력의 심도를 높이고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기존의 교역 중심 협력을 넘어 경제안보와 과학기술, 공동 과제 대응으로 협력 체계를 넓히기 위해 관계 당국 간 협의를 진행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과 지식재산권 등 첨단 분야에서도 한일 간 실무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최근 일본이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공급망 문제도 주된 주제였다. 중국의 대일(對日) 희토류·이중용도 품목 통제 여파로 일본은 직간접적으로 한국 측에 협력과 연대를 언급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한미일 연대’를 강화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위 실장은 “안정적인 공급망은 우리의 경제·안보 정책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정상 간에도 공급망 분야 협력에 대한 의견 접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틀을 실무 판단에 도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여전히 한국의 중요한 공급망 파트너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군사·안보 현안에선 대북 공조 유지가 재확인됐다. 위 실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서 긴밀한 공조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는 ‘인도주의’ 원칙을 토대로 하되 한일 간 이견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부터 협력하기로 했다. 위 실장은 그 첫 사례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 관련 유해 신원 확인 문제를 들었다. 그는 “지난 8월 발견된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위해 관계 당국 간 협력을 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세이탄광은 1942년 2월 갱도 붕괴와 침수로 183명이 숨진 해저(海底) 탄광 사고로 알려져 있다. 희생자에는 다수의 조선인 노동자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민간 조사·잠수 작업 과정에서 유해가 수습됐고, 경찰 감정에서 인골로 확인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다카이치, 日 특유 극진한 환대로 격식 깨
다카이치 총리는 숙소 앞에서 이 대통령을 직접 맞이하는 등 격식을 일부 깨는 방식으로 환대했다. 정상회담 후 환담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과 드럼 합주를 했다. 일본 측은 ‘골든’과 ‘다이나마이트’ 같은 K팝 음악을 배경으로 깔았다. 이튿날(14일) 호류지 방문에서도 다카이치 총리가 동선을 직접 살피며 정상 간 친교 일정을 챙겼다고 전했다. 호류지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정장 차림으로 이 대통령을 안내하며, 호류지에 얽힌 고대 한일 간 교류 역사를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정상회담 후 환담장에서 드럼 합주를 하고 있다. 양 정상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과 BTS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에 맞춰 드럼을 함께 연주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학창 시절 헤비메탈 록밴드 드러머로 활동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일부 신문은 한일 관계가 과거사나 영토 문제로 언제든 갈등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은 지난해 2월 ‘다케시마(일본이 부르는 독도 이름)의 날’ 행사에 차관급 인사를 참석시킨 바 있다. 위성락 실장은 “이번 회담에서 (독도) 관련 논의는 없었다”며 “정부 간의 협의와 합의를 거쳐 진전을 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는 “신뢰 관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밀도 있는 이야기가 진행됐고, 안보·전략 산업·공급망 안정화 등에서 한일 협력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CPTPP는 논의가 진전됐지만,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