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정무수석 퇴임…정권 초 ‘조율과 완충’ 역할 재조명

정치

이데일리,

2026년 1월 20일, 오후 05:53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각 정당의 지도자·관계자 여러분께서 잘 대해 주시고 협조해 주셔서 또 대화와 소통이 끊기지 않고 진행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6·3 지방선거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사직하는 우상호 정무수석이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우 정무수석 후임은 홍익표 전 의원이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첫 정무수석인 우상호 전 수석이 지난 19일을 기해 직을 내려놓았다. 그가 맡았던 정무수석은 여의도와 청와대를 잇는 ‘가교 역할’로, 갈등의 최전선에 있는 자리이다. 계파색이 옅은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대표 주자인 우 전 수석은 정권 초반 국정 동력을 흔들 수 있는 정치적 마찰을 흡수·완화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우 전 수석은 지난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사의를 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처음에 정무수석으로 임명됐을 때 정무수석실에 직원이 네다섯 명 정도밖에 없어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일을 시작했다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원만하게 일을 그만둘 수 있어서 되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또 “앞으로도 각 정당 지도자께서 후임 정무수석과 잘 소통해서 전체적으로 대통령실과 정당 간 끈이 끊이지 않고 협조하면서 일이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우 전 수석은 지난해 6월 8일 정무수석으로 임명됐다. 직제상 상관인 강훈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보다 11살 많고, 선수도 4선(17·19·20·21대)으로 더 높은 ‘당내 선배’다. 정치권에서는 경력과 나이, 계파보다 능력을 우선한 ‘신선한 서열 파괴’라는 호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만큼 수직적 지휘보다 조율과 보완이 중시되는 정무라인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정권 초반 우 전 수석이 보이지 않는 중재의 역할을 해왔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유임 결정이 알려지자, 여권 내부 반발이 거셌다. 당시 우 전 수석이 당과의 소통 창구를 자임해 장관 유임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당내 기류 완화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란 재판부 설치 등 민감한 사안을 두고 당정 간 이견이 표출됐을 때도 중재에 나서 갈등이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장에서는 정무수석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기도 했다. 야당 질의 과정에서 김용범 정책실장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우 수석이 상황을 가로막으며 추가 충돌을 차단하기도 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직원들도 모르게 조용히 물밑에서 많은 일을 했다”며 “2026년 예산안 합의 처리 과정에서도 물밑에서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중재만큼이나 정치권에서는 친화력과 경륜을 강점으로 꼽는다. 민주당 내 86그룹 핵심이지만 특정 계파에 얽매이지 않고 대야·언론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정권 초반 갈등을 키우지 않는 선에서 훌륭한 인사”라고 밝혔다.

앞서 강훈식 비서실장도 우 전 수석에 대한 임명 소식을 전하며 “소통과 상생에 확고한 철학을 지닌 분”이라며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이끌 적임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강원 철원 출생인 우 전 수석은 1962년생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학생운동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부의장을 지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젊은 피’로 정계에 입문했다. 서울 서대문갑에서 4선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과 원내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대선에서는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이 대통령의 당선을 지원했다.

그의 바통은 홍익표 정무수석에게 넘어갔다. 정권 초반 갈등을 흡수하며 역할을 마친 우 전 수석의 시선은 지방선거로 향한다. 우 전 수석이 6·3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 출마를 공공연히 밝혀온 만큼, 국회와 정부를 두루 거친 정치 경력이 지역 행정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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