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의 합당 승부수…노무현은 왜 ‘이의있습니다’를 외쳤나[국회기자24시]

정치

이데일리,

2026년 1월 24일, 오후 03:51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전격 제안하면서 한국 정치사 속 합당 사례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합당은 대체로 같은 보수 또는 진보 진영 내에서 이뤄졌지만, 1990년 민주자유당(민자당) 사례처럼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꾼 예외도 있었습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합당 과정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두 차례나 탈당을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하며 신당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모습(사진 = 연합뉴스)


◇ 1990년 정치지형 바꾼 민주자유당 합당…노태우·YS·JP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가장 정치사에 큰 파급효과를 남겼던 합당 사례는 1990년 민자당 합당입니다. 정청래 대표의 깜짝 합당 제안 이후 이에 비판적인 민주당 내 의원들이 ‘민자당식 깜짝쇼’라고 비판할 때 언급된 그 민주자유당입니다. 현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뿌리이기도 합니다.

민주자유당은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과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이끄는 통일민주당, 고 김종필 국무총리(JP)가 이끈 신민주공화당의 합당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민주정의당은 1987년 13대 대선에서 ‘보통사람’을 앞세운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켰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과반(150석) 아래인 125석에 그쳤습니다. 여당임에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노태우 정부는 대법원장이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뚜렷한 여소야대 국면이었던 윤석열 정부 시절과 비슷했던 셈입니다.

1990년 1월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모여 합당에 합의했고 결국 신생 민주자유당은 개헌선을 훨씬 넘는 218석을 가진 거대여당이 됐습니다.

다만 군사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로 뭉쳤던 통일민주당은 당내 커다란 분란이 발생합니다.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 8명은 합당에 반대하며 김영삼과 결별해 민주당을 창당합니다. 한국정당사에서 계속 언급되는 ‘꼬마민주당’ 시초이기도 합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0년 1월 통일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합당을 반대하며 “이의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 한다”고 소신을 이야기한 것은 지금도 회자됩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오마주 하듯 “이의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부산 공천을 받아 당선됐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 아꼈던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신을 말하며 PK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별하면서 이후 대통령 당선 전까지 험난한 정치인생을 걸었습니다.

민주자유당은 이후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긴 했으나 명맥은 이어갔습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친박-비박계간 갈등으로 자유한국당(친박), 바른정당(비박)으로 나눠집니다. 이후로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이 되기도 합니다. 바른미래당에서 다시 친유승민계가 만든 것인 새로운 보수당입니다. 이후 보수진영은 세력이 가장 큰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유승민)-미래를향한전진4.0(이언주) 등이 모여 미래통합당이 되고 이후 당명을 지금의 국민의힘으로 바꿉니다.

1990년 6월 잠실 올림픽 공원 역도 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창당 전당 대회 모습. 오른쪽 두번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민주자유당 3당 합당에 반대해 이른바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사진 = 연합뉴스)


◇ 수많은 합당-분당 거듭했던 민주당계…2015년부터 ‘더민주’

민주자유당 이후 비교적 큰 합당이 없었던 보수진영과 달리 진보진영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1987년 개헌 이후 통일민주당에 함께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상도동계)과 김대중 전 대통령(동교동계)은 후보자 선출을 두고 대립했습니다. 결국 그해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랐던 동교동계가 나와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창당합니다.

평화민주당은 이후 당명을 신민주연합당으로 변경하고, 3자 합당에 반대해 통일민주당에서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창당한 ‘꼬마민주당’과 합당해 1991년 민주당(통합민주당)이 됩니다.

1995년에는 통합민주당에서 탈당한 동교동계가 만든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했습니다.

당시 통합민주당 소속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조순 총재가 보수여당인 신한국당 합당하자 “군사정권의 후예와 결탁한다”며 비판하며 다시 탈당해 잠시 독자노선을 모색하다가 결국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합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이후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세력을 확대 개편해 창당합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이 됐습니다. 비교적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시절에는 민주당계 정당이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작부터 민주당계 정당의 본격적인 분열이 시작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경으로 두고 당내 쇄신을 요구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호남계 구주류의 다툼이 거세졌고, 결국 신주류 의원 67명은 새천년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합니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의 덕으로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합니다. 다만 열린우리당은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과반 여당이 되면서 많은 논란을 만들어 민주당계 정당의 아픈손가락 이기도 합니다. 이 때 준비되지 않은 열린우리당 초선 국회의원들을 비꼬는 ‘탄(핵)돌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을 바꿨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7대 대선에서 당시 정동영 후보가 완패하면서 정권을 내줬습니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은 진영 내 합당 및 창당을 거듭하다가 2015년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새천년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민주당, 친명-비명 갈등 조짐…5개월 뒤 지선 혁신당 볼까

정청래 당대표의 제언 이후 사실상 침묵을 지키는 조국혁신당과 달리 민주당 내 분위기는 꽤 격앙된 상황입니다.

특히 23일에는 친명계 최고위원으로 분류되는 강득구, 이언주, 황명선 3명의 최고위원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 대표를 규탄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날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며 정 대표를 향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반면 정청래 대표를 지지하는 최민희 의원 등은 공개 찬성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민주당 강성당원을 움직일 수 있는 방송인 김어준씨도 정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입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는 합당 논의를 위해 개최한 24일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인 조국, 혁신당의 독자적·정치적 DNA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며 “이 비전과 가치가 보전돼야 함은 물론이고, 확대돼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해 논의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은 과거 민자당 3당 합당처럼 크게 파격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훗날보면 민주당계 정당의 수많은 정당 합당 사례 중 하나로 짧게 기억될 듯 싶습니다. 현재 합당에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도 ‘논의 과정’을 문제삼을 뿐 정치성향이 완전히 달라 불가하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지방선거가 앞으로 5개월 남았습니다. 우리는 민주당과 혁신당 후보를 동시에 보게 될까요 아니면 혁신당 없이 민주당 후보만 보게 될까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국혁신당 합당 제안 긴급 기자회견을 위해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다.(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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