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 정책은 대부분 상부 구조에만 손을 댔다. 광역 권한을 키우고 예산을 이전하고 공공기관을 분산 배치했다. 그 결과 행정은 비대해졌고 책임은 흐려졌으며 국민 부담은 늘었다. 하부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개편은 언제나 실패했다. 광역통합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조건은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의 전면적 개편이다. 지금의 기초자치 구조는 인구 성장과 지역 확장을 전제로 설계된 낡은 틀이다. 인구는 줄고 생활권과 경제권은 이미 광역화했는데 행정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 상태에서 광역만 키우면 행정은 이중화되고 정책은 분절되며 책임은 더 희석된다.
특히 기초의회는 5극 3특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이다. 기초의회는 지역 발전보다는 정치 부패와 개인의 이권 사업과 특정 개발을 위한 통로, 정당의 하부 조직으로서의 기능이 더 두드러졌다. 주민 삶의 질을 얼마나 개선했는지에 대한 성과는 실종됐고 선거를 위한 조직 관리만 남았다.
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없고 감시는 하나 성과 평가는 없는 구조에서 기초의회가 풀뿌리 민주주의로 작동하리라는 기대는 이미 무너졌다. 기초의회 폐지 또는 대폭 축소는 지방자치를 살리기 위한 구조 개혁이다.
교육감 제도 또한 재설계 대상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전국 어디서나 2시간 이내 이동이 가능한 단일 생활권 국가다. 학령인구는 급감했고 한 학년당 학생 수는 약 25만 명 수준이다. 이런 조건에서 17개 시도별로 서로 다른 교육 체계를 유지해야 할 실질적 이유는 거의 없다.
학년당 약 1만 5000명 남짓한 학생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교육 행정과 정책 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비효율의 고착이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전문성보다 정치 구호와 진영 논리에 좌우됐고 교육 정책은 국가 인재 육성 전략이 아니라 4년 주기의 선거 공약으로 소비돼 왔다. 이는 교육을 황폐화하고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는 구조적 손실이다.
5극 3특이 국가 전략이라면 교육은 지방 정치의 실험장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핵심 인재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 교육감 선출제 폐지와 국가 단위 교육·인재 거버넌스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기에 반드시 결합해야 할 것이 있다. 예산자치와 경제자치의 실질화다. 지금까지의 지방자치는 행정 권한은 분산했지만 경제 권한과 재정 책임은 중앙에 의존해 왔다. 이전 재원에 기대는 구조에서는 지역이 스스로 산업을 키울 유인이 없다.
5극 3특이 지향해야 할 자치는 경제 단위로서의 자치다. 각 권역은 스스로 벌고 쓰며 책임지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예산자치는 세입과 세출, 성과 책임의 동시 이양이어야 한다. 스스로 벌지 못하는 예산은 자치가 아니라 의존이다.
특히 방만한 재정자립도의 현실은 무책임과 포퓰리즘, 지역 갈등의 기형적 복합체가 된 지 오래다. 결국 아무도 내일을 책임지지 않는 예산자치의 실종은 미래 세대의 착취나 다름없다.
각 권역은 세계 산업 질서 속에서 명확한 산업 포지션과 특화 전략을 가져야 한다.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물류, 방산, 농식품, 문화산업 등 선택과 집중 없는 나열식 정책으로는 어떤 지역도 자립할 수 없다. 5극 3특은 국내 균형이 아니라 글로벌 분업 구조 속에서의 역할 배분이어야 한다.
이제 5극 3특의 행정 통합에 각기 20조원씩 4년간 국가 지원이 집중된다. 그 막대한 돈을 오순도순 나눠 써버릴 것인지 아니면 지역 경제를 끊게 할 미래 재원으로 쓸 것인지는 이 경제자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경제자치는 행정 중심의 자치를 넘어 생활자치의 실질화로 이어진다. 주민의 삶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일자리, 교육, 주거, 이동, 의료라는 생활 단위에서 결정된다. 권역이 하나의 경제 단위로 작동할 때 국민은 ‘어디에 살 것인가’를 행정 편의가 아니라 삶의 질과 기회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지역 선택권이다.
이쯤에서 이런 반론이 나올 것이다. “기초의회 폐지는 민주주의 후퇴다.” “교육감 선출제 폐지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든다.” “중앙집권 강화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제도의 이름만 보고 성과를 보지 않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개수가 아니라 책임성과 성과로 평가받는다. 주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부패와 비효율을 양산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 국가 인재 육성을 흔드는 것이 자치의 본령인가.
“지방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또 다른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인구가 급감하고 생활권이 통합된 현실에서 제도의 파편화는 다양성이 아니라 국가 역량의 분산일 뿐이다. 다양성은 전략 안에서 확보해야지 무질서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5극 3특의 본질은 행정구역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역할과 한계를 재규정하고 국가 운영의 하부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기초의회를 그대로 두고 교육을 정치에 맡긴 채 재정은 이전에 의존하면서 광역 경쟁력을 말하는 것은 책임 회피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치’가 아니다. 더 단순하고 더 책임 있는 자치, 경제·재정·산업이 완결된 진정한 자치다. 5극 3특은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구조 개혁이다. 역사적 전환으로 남으려면 그 출발점은 반드시 하부 구조 대개조여야 한다. 이것을 외면한 광역 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