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①]"예견된 美 관세 재인상 압박, 전략적 자율성으로 대응해야"

정치

이데일리,

2026년 2월 20일, 오전 05:30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80년 만의 대변혁입니다. 거기서 ‘너희 속도가 성에 안 차니 우리는 관세 그냥 올리겠다’고 말하는 건 작은 단면일 뿐이죠. 미국의 변화를 냉정히 보고 발을 맞춰야 합니다.”

트럼프 1기 시절 주미대사를 지내며 미국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본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는 지난 13일 이데일리를 만나 현재를 대변혁의 시기로 진단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규범의 질서, 자유무역의 가치는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재인상 압력은 힘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현재 정치국면에선 아주 당연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이재명 정부를 향해 “국제사회의 규칙이 바뀌는, 대단히 어려운 시기임은 틀림 없다”면서도 “한미동맹이라는 축 위에 전략적 자율성을 키우며 실력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핵 문제가 상수인 한국인 만큼, 한미동맹을 경시하며 ‘플랜B’를 찾거나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추구했던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안호영 경남대학교 석좌교수가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고 생각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재인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당황스러울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힘의 지배’는 이미 예견됐다. 관세 재인상 압박은 한 단면일 뿐이다. 미국의 변화가 핵심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규범에 기초해 글로벌 질서를 이끌어가던 미국은 이제 ‘힘의 지배’를 선택했다. 국제규범을 지키며 수호하던, 80년간 해오던 일을 이제 안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자. 관세 25%를 제시해 놓고 맨입으로 내려주진 않겠다며 조건을 걸었다. 우리 정부도 3500억 달러 투자 등으로 답했다. 그런데 예상한 시간보다 지연되고 진전이 없으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힘이 있으니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무역 중심의 체계에서 벗어나 관세를 무기화한 것도, 속도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자는 게 지금 미국이다. 우리 국회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속도감을 내야 할 것이다.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되면 관세 재인상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관세와 대미투자, 그리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모두 연결돼 있다. 하나씩 풀어가면서도 속도감을 내야 한다. 대미투자특별법 통과로 관세 문제를 해결하고, 투자를 현실화하고 외교·안보 분야까지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많이들 ‘지금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라고 한다. 맞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속도감 있게 살 길을 찾으면서 미국과 협력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변화하니 중국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말도 하는데, 그건 답이 아니다. 플랜B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당장 북한의 핵 문제부터 미국 없이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가적 과제를 ‘기술력’의 정체라고 보는데 이를 다시 발전 국면으로 돌리려면 파트너가 누구이겠는가? 경쟁상대인 중국이겠는가? 미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거리를 두기보다 요구를 들어주며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입장을 강화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말한 ‘전략적 자율성’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말하는 전략적 자율성은 ‘미국을 떠나겠다, 미국의 안보 우산을 포기하겠다’라는 게 아니라 자신들(유럽연합·EU)의 힘과 목소리를 키우되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안에서 협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이렇게 가야 한다.

-트럼프 1기 시절 주미대사를 지냈다. 1기와 2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으로 보나.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갔었다. 그때 가장 인상이 남던 구절은 ‘미국산 사용과 미국인 고용(buy American and hire Amercan)’이었다. 그 구절이 트럼프 대통령의 본심이었을 것이다. 자유무역이 미국에 무슨 도움이 됐으며, 무역역전으로 미국이 괴롭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도 ‘힘의 지배’를 위한 노력은 많이 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더 체계적으로 변했고 주변 관료들도 철저하게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로 배치됐다. 실행력이 생긴 것이다.

-트럼프 1기 시절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가 북미정상회담이었다. 지금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오는 4월 방중을 계기로 만남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다.

△4월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큰 그림에서는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핵군축’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막아야 한다. 우리 입장만 생각하면 북미 정상은 지금 안 만나는 게 낫다. 하지만 만나게 된다면 핵 군축은 안 된다는 우리의 입장을 미국에 분명하고 허심탄회하게 전해야 한다. 미국은 이제까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언급하고 있고 북한도 핵보유 인정을 만남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다. 미국에 동맹으로 느끼는 불안감을 전하며 공동의 목표를 계속 강조해야 한다.

미국에 ‘핵 군축’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다. 대내적으로 북핵을 인정하는 순간, 한국의 핵무장 여론이 높아질 수 있고 한미동맹 대신 중국과 밀착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한다. 국내에서 한미동맹의 불신과 파탄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한다. 대외적으론 북한의 핵 인정이 호주나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미국에 말해야 한다.

-변화의 시기에 우리 정부의 ‘실용외교’가 추구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 보는가.

△실용외교가 워싱턴에 ‘플랜B’로 인식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우리는 ‘전략적 모호성’ 전술을 쓰며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 가까워지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급격하게 낮아졌다.

중국 역시 한국을 믿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 한국을 생각해보자. 가까워질만 하면 결국 안보문제 때문에 미국편으로 돌아서는 게 한국인데 신뢰를 하겠는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가 그랬다. 결국 우리의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인지하며 원칙이 있는 실용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안보와 북핵 대응이 실용이다. 그리고 기술력을 올리는 것이 실용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제 반도체, 디스플레이, 퀀텀, 바이오 등 중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우위에 있었지만 10년 후에는 많이 뒤질 수 있다. 중국이 인력, 자본의 힘을 가졌다면 우리는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기술력도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바이오 등 세계 1등은 미국이다. 우리가 플랜B를 언급하며 중국을 보기 시작한다면 미국이 북핵을 막아줄 것이며, 민감기술을 주겠는가. 우리가 가진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을 인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위에 실력을 키우고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할 일을 하며 해야 한다. 안보를 강화하며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우리의 힘을 증진해야 북한도 우리를 대화 상대로 본다.

-최근 일본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이에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고, 미일 밀월관계가 부각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으로선 미일 동맹은 그냥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다. 한국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이나 플랜B 등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일본은 누가 집권을 하든 미일 동맹은 당연히 사수해야 하는 목표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를 보는 눈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리더를 좋아한다. 자민당이 2차대전 이후 3분의 2선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보고를 받았을 텐데, (다카이치 총리를) 대단하고 괜찮은 리더로 볼 수 있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 이상으로 미일 관계가 강화될 수 있다. 다만 미일 관계의 강화가 삼각동맹의 한 축인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 문제 역시 자신감이 넘치면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지는 만큼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다카이치 총리를 마냥 축하하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변화하는 시점 속에 한중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첫 순방지로 중국을 택하기도 했다.

△한중 정상회담에 아쉬움이 컸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접을 잘 받고 왔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 이야기도 진전이 없었고, 서해 구조물 일부 철수도 전면 철수도 아니다. 큰 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 중국 측의 표현이 달라졌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중국과 잘 지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다만 한중 관계가 한미 관계를 대신하는 플랜B가 될 수 없다. 중국 역시 한반도 특성을, 한국의 상황을 잘 안다. 우리는 한미관계를 기본으로 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원칙에 입각한 선린외교가 대중관계의 기본이어야 한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안호영 경남대학교 석좌교수가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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