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 2026.2.19 © 뉴스1 김도우 기자
서울에는 930만 명이 산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나도 그중 하나다. 광안리 바다냄새를 맡고 자라던 내게 서울은 오래도록 막연한 환상이었다. 내가 아는 서울이라고는 친척 결혼식에 가기 위해, 모과향 가득했던 아버지차 뒷좌석에서 수 시간 멀미를 견디다 겨우 닿던 곳이었다. 광화문, 명동, 종로, 대학로, 압구정. 귀에 박히도록 들었지만 어딘지 알지 못했다.
스무살 되던 해, 나는 그 도시에 들어왔다. 바쁘지만 친절한 사람들, 부드럽고 나긋한 말투, 빽빽이 들어선 빌딩 모든 게 그림 같았다. 명동과 종로가 걸어서 닿는 거리라는 걸,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져 있다는 걸 두 발로 걸으며 알게 됐다. 따로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이름들이 하나의 흐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신기하면서도 설렜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동대문구였다. 회기동 주택가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뒷마당엔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었고, 겨울마다 보일러가 얼어붙던 오래된 집이었다. 대문을 나서 걸으면 홍릉을 거쳐 청량리가 나왔다. 자연스레 그곳을 드나들게 됐다. 화려한 강남이나 여의도, 드라마틱한 한강변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좁은 골목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 투박함에 오래 머무르게 됐다.
청량리시장 한편엔 통닭집이 줄지어 있다. 기름내 짙게 밴 골목에는 튀김 소리가 가득했다.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그곳을, 그 시절 만났던 친구와 자주 찾았다. 낡은 가게 한구석에 앉아 졸업 이후의 삶, 쉽게 답이 나오지 않던 미래를 주제로 한참을 떠들었다. 확신보다는 불안이 더 컸던 시기였다.
졸업반이 되고, 마주 앉았던 자리가 비게 되면서 한동안 그곳에서 발길이 멀어졌다.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에게 때때로 서울은 무정했다. 설렘 가득했던 도시는 차츰 쓴맛을 드러냈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밥을 먹다 밀려온 허무함에 숟가락을 내려놓은 적도 있었다. 겹겹이 쌓이는 일과 속에서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세월이 지나 이별의 아픔이 인생의 무게보다 훨씬 가볍다는 걸 알게 됐을 즈음 다시 청량리를 찾았다. 서른을 넘긴 뒤였다. 어느덧 서울에서의 기억은 부산에서의 기억보다 더 커져 있었다.
요즘도 가끔 시간이 되면 광화문에서 청량리까지 걷는다. 이 도시가 그림처럼 보이던 그 시절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광화문엔 바쁜 직장인들이 오간다. 떠들썩한 종로를 지나 세운상가에 이르면 한산해진다. 동대문에선 외국인 관광객들과 비닐 보따리가 가득 실린 짐수레를 미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동묘를 넘어 신설동과 청량리로 들어서면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각자의 방식과 속도대로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 그 길 위에 층층이 쌓여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여전히 통닭 골목이 있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홀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누군가는 평생 이 도시에서 버텨왔고, 누군가는 나처럼 흘러 들어와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들 인생의 무게를 내가 헤아릴 순 없지만, 그 무게가 모여 이 거대한 도시의 숨소리를 만들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6월 3일, 우리는 서울시장을 뽑는다.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는 930만 명의 시간을 떠올리게 되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그 무게가 외면받지 않는 선택이 이뤄지길 바란다.
liminallin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