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北 구성 핵시설' 발언에 촉발된 한미갈등

정치

이데일리,

2026년 4월 22일, 오후 04:42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북한의 무기급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영변과 강선, 그리고 평북 ‘구성’을 언급한 후 한미관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정 장관의 ‘구성’ 발언 자체는 도화선이었을 뿐, 지난 1년간 쌓여온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폭발했다고 본다.

22일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은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 3월 10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만나 정 장관의 구성 발언에 대해 항의를 했다며 즉각 사퇴를 요청했다. 성 위원장은 정 장관을 향해 “당신의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 국가 안보와 한미동맹에 매 순간순간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며 “지금 바로 결단하시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연합뉴스 제공]
한미 외교가는 물론,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된 정 장관의 ‘구성 우라늄 농축 시설’ 발언은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평북 구성시에 핵무기 기폭 장치를 실험해 보는 ‘용덕동 고폭 시험장’이 있다는 사실은 과거부터 공공연히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고영구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평북 구성시 용덕동에서 핵 고폭 실험을 해 왔다”고 밝힌 적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구성 핵시설에 대해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CSIS의 빅터 차 석좌교수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구성 핵시설에 대한 보고서를 낸 적이 없다고 부정하긴 했지만, 지난해 용덕동을 거론하며 핵무기 고폭탄 기폭장치의 설계·부품 실험 용도로 운영 중인 북한 내 유일한 시설이라 밝히기도 했다. 용덕동은 구성시 내 행정구역이다.

이에 정 장관 역시 지난 20일 기자들을 만나 정책 설명을 정보 유출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언급했고, 이어 이재명 대통령도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고 자신의 엑스에서 밝혔다.

결국 미국은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가 정 장관 발언의 근거가 됐다고 의구심을 표현한 것은 ‘매끄럽지 않은 양국의 관계’ 탓이란 분석이 힘을 얻는다. 연구기관들의 보고서와 현직 장관의 발언의 무게감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한미 양국의 신뢰가 깊었다면 충분히 대화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국은 이미 지난해 비무장지대(DMZ)의 출입 승인권한을 둘러싼 입법 과정에서 마찰을 겪었고 뒤이어 9·19 남북 군사 합의 복원, 한미 연합 훈련 조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미국이 반대하는 이 사안들의 중심에는 정 장관이 있었다. 굳이 대북관련 문제가 아니더라도 한미 양국의 이견은 계속 터져 나왔다. 지난해 7월 주한미군이 쓰는 경기 평택 오산 기지를 압수 수색하면서 미국은 우리 정부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올 2월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치한 서해 공중 훈련에 앞서 국방부에 사전 통보했는지를 놓고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단일 사안에 대한 이견이라기보다, 해소되지 못한 이슈들이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태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이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의 법적 안전을 거론하며 고위급 외교 협의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출국 협조 요청을 한 정황 등이 포착되며 ‘동맹 길들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이날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항의한 적은 없지만 포괄적 협의를 한 적은 있다”며 “미국과의 정보 공유에 아직까지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본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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