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를 지키라더니… 군인 자녀 교육마저 ‘특혜’라 말하는 사회

정치

이데일리,

2026년 5월 24일, 오전 12:23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대한민국에서 군인은 참 묘한 직업이다. 국가가 필요할 때는 “헌신”을 요구받고, 정작 그 헌신 때문에 발생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특혜 아니냐”는 시선을 받는다.

최근 한민고등학교를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기숙형 고등학교인 한민고는 군인 자녀들의 교육 불안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다. 군인은 직업 특성상 1~2년마다 근무지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실제 보도에 따르면 군 복무 중 10번 이상 이사한 경험이 있는 군인이 79%에 달하고, 군인 자녀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두 번 이상의 전학을 경험했다고 한다.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군인 가정도 4분의 1 수준에 이른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군인 가족은 왜 늘 떠돌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아이들의 삶 전체를 흔드는 문제다. 학교가 바뀌면 친구가 바뀌고, 교과 과정이 바뀌고, 내신 체계와 수행평가 기준도 달라진다. 어떤 학교에서는 이미 배운 단원을 또 배우고, 어떤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단원이 이미 끝나 있기도 하다. 특히 격오지 근무가 많은 군인의 특성상 학원 접근성도 떨어진다.

이처럼 군인 자녀들은 출발선 자체가 일반 학생들과 다르다. 한민고는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군인 자녀들이 부모의 발령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전국 단위 기숙형 학교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지 않은데도 서울 주요 대학과 사관학교 진학 성과가 꾸준히 나왔다. 그래서 매년 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성과가 나왔는가”다.

◇한민고의 성과는 ‘특권’이 아니라 ‘안정’에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성과가 나오면 “특권학교”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한민고 사례는 오히려 정반대다. 핵심은 특혜가 아니라 안정성이다.

전학 걱정 없이 3년을 다닐 수 있었고, 친구 관계가 유지됐고, 생활 리듬이 안정됐고, 공동체 속에서 학습이 이어졌다. 다시 말해 성과의 원인은 돈이 아니라 환경 안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전교조와 민노총 계열 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민고의 공립고 전환 요구가 이어지고 있고, 일부에서는 한민고를 “군 장악” “군 특혜”의 상징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그 영향 때문인지 올해는 처음으로 군 자녀 모집이 미달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왜 군인 자녀 지원만 ‘특혜 프레임’에 갇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특혜인가. 군인은 원하는 지역에서 살 수도 없다. 아이 학교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다. 자녀 입학식이나 졸업식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전방 근무가 잡히면 가족은 떨어져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교육 환경 하나 제공하는 것이 정말 “특혜”인가.

오히려 지금까지가 방치에 가까웠다. 실제 정부도 군인 자녀 교육 문제를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한민고 모델을 기반으로 ‘제2 한민고’ 형태의 군 자녀 자율형 공립고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정부도 인정한 군인 자녀 교육의 구조적 불이익

국가 역시 이것을 “특혜”가 아니라 “보완해야 할 불이익”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민고 운영 과정에서 일부 회계·운영 문제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공공성·투명성 강화 논의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운영상의 문제와 학교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운영 문제와 존재 이유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어떤 병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병원 문을 닫자고 하지는 않는다. 운영을 개선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유독 군인 자녀를 위한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는 “왜 그들만 따로 배려하느냐”는 차가운 시선부터 들이댄다.

이것은 단순한 교육 논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군인을, 그리고 그들의 헌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늘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희생의 비용은 개인과 가족이 온전히 감당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면, 기다렸다는 듯 ‘특혜 프레임’을 씌운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공동체는 결코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가를 지키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안정성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대가는 국가 전체가 치르게 될 뿐이다. 실제로 수많은 군인이 자녀 교육 문제로 전역을 고민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분리 생활을 감당하고 있다.

한민고 논란의 본질은 학교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지금 누구의 희생을 묵인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이기적인 답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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