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주는 교훈[한반도 24시]

정치

이데일리,

2026년 5월 26일, 오전 07:06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최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만문제는 크게 부각됐고 한반도문제는 뒤로 밀렸다. 양안문제(대만해협문제)와 한반도 문제(북핵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을 잠재한 불꽃 튀는 접점지역으로 지정학적 단층선(강대국·세력권 간의 충돌이 집중되는 지점)에 해당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에너지공급과 관련한 단층선이자 초크 포인트(Choke Point·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핵심 길목)라면 대만과 대한민국은 반도체 밸류체인과 미·중 전략경쟁과 관련한 단층선에 위치한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했을 뿐 한국전쟁을 끝내는 문제와 북핵 해법을 모색하는 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란 핵개발을 문제 삼아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이 핵보유를 고집하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면 ‘이중잣대’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중 정상회담 전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전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등 인공지능(AI)과 우주항공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경영자를 대동하고 중국에 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시진핑 주석과 중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으며 무역과 사업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중 전략경쟁을 본격화하면서 ‘디커플링’을 추진하고 2기 출범과 함께 ‘관세폭탄’을 퍼붓던 트럼프 대통령의 ‘스트롱맨’ 기백은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상호존중’을 강조하고 ‘아부’에 가까운 저자세를 보인 것은 11월 중간 선거를 목전에 두고 고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잡고 중동전쟁을 조기에 종식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잉 항공기 200대 구매, 미국산 대두 대량 수입, 미국산 석유 구매 의사 확인 등을 성과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를 의식한 성과를 나열했지만 관세문제나 중동전쟁과 관련한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시진핑의 단호함’에 밀리는 쇠락하는 패권국가의 약점만 노출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치와 규칙을 무시하는 거래 행보를 미뤄볼 때 한반도 안보문제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절감할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 관리’에 치중했고 중국은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관계’ 구축에 주력했다.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중국 시진핑 주석의 대미공세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시 주석은 “중·미는 적수가 아닌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국이 기존의 강대국을 위협할 때 전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이론)에 빠지지 말고 대국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이 신흥 강대국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지 말고 두 나라(G2)가 함께 세계질서를 창출해 공존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을 피하려면 각자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신형대국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 주석의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문제를 ‘관계 관리’를 위한 거래카드로 내밀고 ‘상호존중’이란 말로 화답했다.

대만문제와 관련해서 중국은 ‘레드라인’을 긋고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방어할 것이냐고 물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말하지 않겠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무기 판매문제를 ‘대중국 협상 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고 ‘대만독립’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미·중 사이의 ‘관계 관리’를 위해 대만에 대한 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노출해 한국, 일본 등 미국의 방위 공약에 의존하는 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 주도의 단극 질서가 저물고 다극 체제로 세계질서가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질서 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AI 시대 핵심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국익 우선의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자강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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