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위를 달리는 한국의 미래[공관에서 온 편지]

정치

이데일리,

2026년 6월 05일, 오전 06:00

[원도연 주우즈베키스탄대사] 타슈켄트의 초르수 시장을 걷다 보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걸어온 생생한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한 상인이 “대사님, 김치는 매운데 왜 자꾸 먹고 싶을까요” 하고 묻더니 곧장 고려인식 당근김치 ‘마르코프차’를 한 접시 내밀었다. 옆에 있던 우즈벡 청년은 한국 드라마 속 김밥이 너무 맛있어 보인다며 “김밥을 먹으러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옆의 고려인 어르신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진 가족사를 들려주었다. 그 전통시장에 고려인의 이주가 남긴 역사, 우즈베키스탄에 스며든 한국 문화의 오늘 그리고 한국을 꿈꾸는 젊은 세대가 열어갈 내일이 함께 놓여 있었다.

원도연 주우즈베키스탄 대사(사진=외교부)
9월 16~17일 서울에서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린다. 2007년 출범한 한·중앙아 협력의 틀이 그동안 장차관급 회의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이번 회의는 처음으로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은 특별한 파트너다. 양국은 2019년 중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된 뒤 산업, 보건, 교육,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의 폭을 꾸준히 넓혀 왔다. 젊고 역동적인 인구, 중앙아를 잇는 지리적 위치, 개혁과 개방의 의지는 우즈벡을 한국의 미래 협력 지도에서 더욱 빛나게 만든다.

무엇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고려인 동포사회가 있다. 17만여 명의 고려인들은 고난의 이주사를 딛고 우즈베키스탄 국민과 상생하며 양국을 잇는 따뜻한 다리가 됐다. 고려인 출신 의원 2명이 우즈벡 하원에서 활동하며 동포사회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고 김병화·황만금 박물관은 강제 이주 후 척박한 땅을 일구며 우즈벡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고려인 지도자들의 삶을 보여준다. 또한 타슈켄트에 고려인의 삶과 역사를 기록할 고려인 역사박물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양국이 공유하는 공동체의 역사가 상호 협력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운행된 우리 고속철은 양국 협력의 새로운 상징이다. 타슈켄트와 실크로드 도시 히바를 잇는 약 1020㎞ 노선에 한국형 고속철이 달리며 이동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관광과 물류의 새 길이 열리고 있다. 이 성과 뒤에는 한국의 600여 개 철도 부품 협력사와 우즈벡 철도 인력의 땀, 현지 기후와 플랫폼에 맞춘 세심한 기술 협력이 있었다. 기차 한 대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와 인재, 신뢰가 함께 수출된 셈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이 성공을 지속적인 협력으로 이어나가는 일이다. 우즈벡 젊은 인재들이 한국을 배우고 한국 기업이 현지 파트너와 함께 성장하며 양국 국민이 더 자주 오가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우즈벡 대한민국대사관은 현장의 목소리가 서울에 닿고 한국의 역량이 타슈켄트에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나가고자 한다.

옛 실크로드는 비단과 향신료가 오가는 길이었다. 오늘의 실크로드는 기술, 사람 그리고 신뢰가 오가는 길이다. 타슈켄트의 시장에서 나눈 한 접시의 당근김치와 우즈벡 동과 서를 잇는 우리 고속철 모두 한국과 우즈벡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9월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이미 서로의 미래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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