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육군사관학교는 군부대이기 전에 대학이다

정치

이데일리,

2026년 6월 24일, 오전 05:00

[권영호 전 육군사관학교장]‘군대의 수준은 장교단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군의 오랜 격언은 첨단 무기가 전장을 지배하는 현대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안보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무기의 성능만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고 전장을 지휘하는 장교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육군사관학교의 전남 장성 이전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사시설의 물리적 이전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를 책임질 장교를 어떤 환경에서 양성할 것인가에 관한 국가적 과제다.

흔히 육군사관학교를 군사훈련 위주의 군부대로 생각하지만 군사훈련 기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대학에 훨씬 가깝다. 생도들은 전공과 교양 교육을 이수하고 토론과 발표, 연구 활동과 논문 작성을 수행한다. 고등교육법도 육군사관학교를 4년제 정규 대학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졸업생에게는 교육부가 인정하는 학사 학위가 수여된다. 육군사관학교는 군부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미래 장교를 길러 내는 특수목적대학이며 이것이 사관학교 통합 및 이전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미래전의 양상은 이러한 대학 기능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중동지역에서의 전쟁은 드론, 인공지능(AI), 위성정보, 우주·사이버 전력이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래의 장교는 단순한 전술가가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복합적인 전장 환경을 분석하며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문 지휘관이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연합작전을 주도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지적 역량은 필수적이다.

정부에서 육군사관학교의 지방이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명품 사관학교’의 조건은 경쟁력 있는 대학의 조건과 다르지 않다. 우수한 학생과 우수한 교수진 그리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연구 환경이 필요하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수도권의 풍부한 교육·연구 생태계 속에서 다양한 대학 및 연구기관과 교류하며 학문적 시야를 넓히고 있다. 실제 올해 졸업한 한 장교는 “육군사관학교가 서울에 있는 덕분에 유명 민간 대학에서 학점 교류를 하며 대학생들의 시각과 더 큰 사회를 이해할 수 있었고 다양한 학회에 참가하며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육군사관학교의 경쟁력이 교정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의 교육·연구 네트워크와의 연결 속에서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수진 역시 수도권의 대학, 연구기관, 정부 부처와 긴밀히 협력하며 국방정책과 군사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연구 활동은 단순히 넓은 부지나 최신 시설만으로 대체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기관과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수한 교수의 확보다. 육군사관학교는 현재도 민간 교수 충원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 대학과 비교할 때 보수와 연구 여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라는 입지와 수도권의 교육·연구 환경은 우수한 교수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돼 왔다.

만약 지방 이전이 이뤄진다면 이러한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는 사관학교들은 민간 교수 확보와 학술교류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교 양성의 질은 교수진의 수준과 직결된다.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수한 장교를 길러 내기도 어렵다.

실제로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비수도권으로 이전한 수도권 대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방대 이전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된 교수 확보와 학술교류의 어려움 그리고 공군사관학교가 안고 있는 수도권 교육·연구 네트워크와의 거리 문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육군사관학교는 단순한 훈련소가 아니라 미래의 전장을 이끌 지휘관과 전략가를 길러 내는 국가적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이전 논의의 기준은 지역적 논리나 정치적 상징성이 아니라 장교 양성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는 결국 사람에게 달렸다. 그리고 우수한 장교는 우수한 교육환경 속에서 길러진다. 육군사관학교 이전 문제 역시 ‘어디로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더 훌륭한 장교를 길러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장교의 길을 준비하고 있으며 수많은 청소년들이 그 뒤를 잇기 위해 꿈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내리는 결정은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뿐 아니라 이들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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